걸음을 멈추고 / 나 희 덕 걸음을 멈추고 / 나 희 덕 그 나무를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삭정이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이십년 후의 내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한쪽이 베어져나간 나무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덩굴손이 자라고 있.. 詩 2017.09.18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 박정대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 박정대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적막한, 적막해서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 詩 2017.01.10
율포의 기억 / 문정희 율포의 기억 /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 詩 2016.10.20
가을에 / 정한모 가을에 /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 詩 2016.09.27
바다가 푸른 이유 / 박두규 바다가 푸른 이유 / 박두규 바다는 왜 푸르냐고 아이가 물었다. 섬과 바위를 쉼 없이 때리다 보니 스스로 멍이 들어서 그런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바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직접 말했다. 나무와 바람, 달맞이꽃이나 하늘다람쥐, 은빛 갈치 떼들이나 독을 품은 방울뱀.. 詩 2016.09.07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 詩 2016.08.14
장미꽃 / 김재진 장미꽃 / 김재진 양이 뜯지 못하도록 가시를 내밀고 있는 꽃, 감기에 걸릴까 봐 유리덮개로 바람을 막아줘야 하는 예쁜 내 장미꽃, 별을 쳐다보며 나는 별 속에 네가 피어 있을 것이란 상상으로 행복해진다. 눈감으면 느낄 것 같은 네 향기 떠올리며 따뜻해진다. 네 마음이 보내는 환한 빛,.. 詩 2016.07.14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 詩 2016.06.23
[스크랩] 섬에서 울다 / 원재훈 섬에서 울다 / 원재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안다 섬이 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것인지 떠나간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은 백사장에 모래알이 왜 그리 부드러운지 스스럼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인지를 안다 섬은 그리움의 모래알 거기에서 울어 본 사람은 바다가 우주의 .. 詩 2016.05.22
행복 / 유치환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 詩 201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