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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

필부 2006. 9. 15. 02:01
 

가을볕 / 장석남 우리가 가진 것 없으므로 무릎쯤 올라오는 가을풀이 있는 데로 들어가 그 풀들의 향기와 더불어 엎드려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별로 서러울 것도 없다 별 서러울 것도 없는 것이 이 가을볕으로다 그저 아득히만 가는 길의 노자로 삼을 만큼 간절히 사랑은 저절로 마른 가슴에 밀물 드는 것이니 그 밀물의 바닥에도 숨죽여 가라앉아 있는 자갈돌들의 그 앉음새를 유심히 유심히 생각해볼 뿐이다 그 반가사유를 담담히 익혀서 여러 천년의 즐거운 긴장으로 전신에 골고루 안배해둘 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 없으므로 가을 마른 풀들을 우리 등짝 하나만큼씩만 눕혀서 별로 서러울 것 없다 언젠가 그녀는 가을을 훔치고 있노라 하였다. 아니, 그건 내가 그녀의 욕심을 나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를 머리에 얹고 섬진강 상류의 어느 개울의 풀밭을 밟곤 하다가 가을빛이 너무 매혹적이라며 화폭에 담기를 반복한다 하였다. 가을이란 그릇에 담는다고 남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허황한 욕심은 상처만 된다고 익어가는 풀밭에 가을빛이 쏟아지게 그냥 두고 보기만 하라 일렀다. 가을이란 보고 듣고 향기에 눈을 감듯 가슴에 담는 거라 알은체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손에 닿은 거리에 서 있지 않았기에, 그녀의 손가락이나 눈빛을 하늘에서만 더듬을 수 있었기에 말리 수는 없었다. 그녀가 허황되게 흐르는 가을을 정지시켜 그림으로 옮겨두엇다 한들 그것은 박제된 골동품처럼 짙은 곰팡이 냄새만 맡게 할 것이다. 끝내 그녀의 가을을 구경조차 못하고 이별을 맞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어느 하늘 아래서 숨을 고르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가을을 탐냈던 맑은 시선이 지금도 가을빛이 되어 내 허리를 휘감고 있을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아름다운 눈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응시이다. 그것을 욕심이라 탓햇던 나를 탓하며 두 손을 모은다. 어디서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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