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언젠가 한번은 매미처럼 앵앵 대다가 우리도 기약없는 여행길 떠나갈 것을 언젠가 한번은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쨍하고 해뜰 날 기다리며 살아왔거늘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풀잎에 반짝이고 서러운 것은 서러운대로 댓잎에 서걱인다 어제 나와 악수한 바람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산다는 것의 쓸쓸함에 대하여 누구 하나 내 고독의 술잔에 눈물 한방울 채워주지 않거늘 텅 빈 술병 하나씩 들고 허수아비가 되어 가을들판에 우리 서 있나니 인생, 그 쓸쓸함에 바라볼수록 예쁜 꽃처럼 고개를 내밀고 그대는 나를 보는데 인생, 그 무상함에 대하여 달빛이 산천을 휘감고도 남은 은빛 줄로 내 목을 칭칭감고 있는데 내 살아가는 동안 매일 아침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늘 그래도 외로운거야 욕심이겠지 그런 외로움도 그런 쓸쓸함도 없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 항상 그렇듯 가을이 오면 내 눈밑의 검은 점은 유난히 커보이고 내 눈빛은 물기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물론 가을만이 아니지만, 목을 휘감고 스치는 바람이 서늘해지면 쓸쓸하다는 감정이 짙어지는 이유는 존재에 대한 의미가 새삼스럽게 가슴에 닿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가을이 다가오면 올 가을을 어떻게 보낼지 근심하게 되었다. 하늘은 맑아지고, 모든 것들이 그 간의 삶을 갈무리하는 결실의 계절인데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쓸쓸한 그림자를 건져올리고 있다. 욕심 때문일까.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빈 가슴으로 가을을 맞으며 무엇이 나를 외롭게 할 것인가 자문해 본다. 아직도 나에게 욕심이란 게 남아 있을까? 흐르는 음악은 브람스 첼로소나타 1번 E단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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