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병들어 행복합니까

필부 2006. 8. 9. 03:17
 

병들어 행복합니까 / 김소연 일파만파지요 당신의 다녀감은 다녀가지 않음은 만파억파입니다만 감정을 적대시합니다만 육신이 꺼내놓은 융단에서 쉬려고 합니다만 관계치 말아주십시오, 당신은 한번도 아니오, 라고 말씀하지 않는군요 좋은 버릇입니다만 악몽은 행복으로 둔갑하여 오후 한나절을 나에게 헌신해주었다 넌 상처를 전파하는 종파의 지도자 나의 꿈이 너가 될까봐 전전긍긍하시길 나는 난해한 말들을 창가에 심어두었고 가끔 물을 주었고 그 뿌리는 그리하여 썩었다 우리는 화랑교에서 다리를 절며 걸었다 절던 우리의 다리는 서로 방향이 달랐다 기우뚱 한번 어깨가 멀어지면 다음은 맞닿지만 그때마다 나는 되도록 시선을 멀리 두었다 관악산을 장악한 아카시아들이 주먹마다 흔들고 있는 백기를 보고 어지러웠다 그 지독한 향기들 눈 속의 솔가지 꺾어 이내 뜻을 알리라던 단호한 사랑의 고백들은 나로 인해 무력하리라 그 솔가지들 꺾어들고 잔 세어 술 마시듯 세어보아라 너가 비운 내 술독에 어떤 사내들이 취해 돌아서는지 돌이켜 볼 것도 없다 너로부터 멀리 가려 할 때마다 내가 당도한 곳은 너의 창, 그럴수록 생은 납덩이처럼 무거운 그림자를 키워가지만 아무려면 어때, 뭇 사내들이 그 그림자에 와 더위를 피하며 쉬었다 가든지 말든지 당신의 눈물로 나를 침례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녁은 오지 않을 것이고 와도 소용없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병들어 행복합니까 병들어 행복하다고 묻는 사람이나 병들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분에 넘치는 정신적 호사를 누리는 부류라 할 것이다. 자조적인 탄식이라 해도 그것은 너무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낙심이리라. 그러나 달리 눈을 치겨뜨고 세상을 보면 병들지 않고 온전히 사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모두 어느 정도는 병에 들은채 살아가고 간혹 스스로 잘난체하는 자신을 치겨 세우면 삶이란 질곡을 걷고있다. 아무래면 어떠하겠는가. 병이 들었거나 건강이 지나쳐 팔자걸음으로 활보하듯 인생을 즐기거나 모든게 끝이 있고, 그 마지막 갈무리를 위해 보자기를 풀었다 다시 챙기듯 짐을 꾸리기를 반복하며 병이 깊어지는 것을....... 병이 들었다면 든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런거겠지. 아무튼 세월은 가고 늙어만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일진데 병들어 행복하다 한들 나무랄 이 어디 있겠는가. 서로 어루만지며 불쌍히 여겨주는 사랑이 있어 다행이 아니겠는가. 늦은 밤 모처럼 어부림에 머물며 흔적을 남겨 둡니다. 그 동안 너무 생각에 잠겨있어서 팔에 힘을 붙이려 뭔가를 시작했더니 말 그대로 눈코 분간할 겨늘이 없습니다. 자리가 잡히면 좀 시간이 날 것입니다. 항상 사랑하는 누이님들께 안부를 대신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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