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강역 / 나희덕 극락강이라는 역이 있기는 있을까, 광주역이 가까워오면 늘 두리번거렸다 극락강역을 놓쳐버린 시선은 번번이 광주역 광장의 어둠에 부려졌지만 어느날 들판 사이로 흐르는 실날 같은 물줄기와 근처의 작은 역사를 보았다 역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도 보았다 때 절은 옷을 입고 아비를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너는 바리데기를 기차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러나 아이의 해진 옷에서 풀려난 실오라기가 강물처럼 따라와 내 삶의 솔기를 홀치고 바리데기는 강을 건넜는지 다시 보이지 않았다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극락강역,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지만 대합실에는 밤이면 오롯하게 불이 켜지고 등꽃 그늘에 누가 앉았다 간 듯 의자 몇 개 놓여 있다 그 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生은 또 한 겹의 물줄기를 두르고 언젠가는 죽음의 강물과 合水하는 날이 오겠지 극락강이라는 역에도 내릴 수 있겠지 스스럼없이 만나 차 한잔 나누며 마주 앉아있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얼 바라거나 부탁할 일 없이 마음 편하게 말이 없어도 좋으니 그냥 곁에서 한동안 생각없이 눈빛만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간혹 아이처럼 마음의 짐을 부려두고, 등을 기대듯 부벼보고 싶은 욕심이 간절히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그의 숨결에서 나를 묻어두고 하늘과 바람과 이 세상 모든 걸 나눠가지고 싶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이 부질없는 한줄기 지나는 바람이라도 좋습니다. 돌아서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되는 만남이라도 괜찮습니다. 내 가슴에 창문을 열고 그의 체취로 채우다 세월의 의미가 제자리를 다시 찾아도 좋으니 잠시만 환기를 시키고 싶습니다. 허나, 그는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존재한다는 사실로 의미가 되는 거지요. 사실상 내게 의미로 다가오는 일이란 그가 나와 여기에 있어야 맞지요. 즉 존재가 존재로 실재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의미로 실존해야 한다 함이지요. 그러나 정말 아름다워지는 일이란 조금은 참고, 약간은 슬퍼해야 한다는 절약의 미덕이 따라야 한다지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다 가야합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인간의 생존형태입니다. 극락강역 근처에 머물며 한계령이 생각나는 이유가 뭐죠? 한계령에서 마음을 부려놓았듯 언제 짬을 내어 극락강역에서 극락행 열차표를 에약해 둘 작정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광주역 바로 인접 정거장이 극락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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