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발생의 역사적 배경 / 오강남 예루살렘으로의 여행과 죽음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났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 위해 가는 길이지만, 제자들은 “누가 크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는 날 누가 재무장관이 되고 누가 외무장관이 되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격론을 벌인 셈이다. 노자님이나 공자님이 다른 이들의 자기들의 심원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느꼈던 그 실존적 고독을 예수님도 똑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때는 유월절 절기였는데, 예루살렘은 디아스포라(diaspora)12)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분주했다. 모두 ‘이 절기에 메시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막11:10)하며 환호하였다. 이른바 예루살렘 입성이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었다.(11:15) 제사장 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저녁에는 거기서 가까운 베다니라는 마을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라는 삼남매의 집에서 유하였다.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어느 집 다락방에서 이른바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면서 그의 살과 피니 받으라고 하면서 이것으로 그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 혹은 ‘성찬’을 하는 이유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가 ‘본질에서’(in substance) 정말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을 믿고, 프로테스탄트는 주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희생과 현존을 상기시키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만찬이 끝나고 모두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이르고, 거기서 ‘돌 던질 만큼’ 거리에 가서 홀로 기도했다. 이때의 기도가 그 유명한 기도 :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마26:39)하는 기도를 드렸다. 제자들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잠을 잤다. 얼마 후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안내를 받은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타나 예수님을 잡아갔다.13) 유대 대제사장 가야바로부터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하는 심문을 받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다시 말하오. 이제로부터 당신들은,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마26:63-64) 가야바는 이런 발언을 신성 모독이라 규정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질문을 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이 이 질문에 대답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14) 복음서의 주장에 의하면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하며 오히려 민란을 꾸미다가 잡혀온 바라바를 그 대신 방면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결국은 유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사형선고를 받고,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골고다라고 하는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음을 당했다. 십자가에 위에서 한 ‘일곱 가지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것이다.(막16: 34) 이 말은 시편(22:1)에 나오는 말로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내리고,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십자가 죽음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한 가지 기억할 일은 앞에서 유대교를 이야기할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복음서가 쓰여질 때 벌써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결국 정치범이었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정치범의 경우에 한해 십자가형을 내렸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유대인들 사이에 저항이 잦아 한 시도 그들에 대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고, 특히 갈릴리는 무력봉기로 로마를 물리치려는 열심당들(Zealots)의 본거지로서 민란이 잦은 곳이라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로마 통치자들은 갈릴리 사람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는 등 백성들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처형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이야기의 흐름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복음서 기자들이 복음서를 쓸 당시 반유대인 정서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은 로마인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로마인들에게 예수님을 죽이라고 요구한 유대인들의 소행인 것처럼 기술하였다는 것이다. 복음서의 이런 기술방식은 지난 2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을 미워하고 박해하도록 한 성서적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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