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리스도교 발생의 역사적 배경 / 오강남 3

필부 2008. 9. 24. 14:23
 

그리스도교 발생의 역사적 배경 / 오강남 갈릴리에서의 활동과 가르침 예수님은 침례와 시험을 받은 후 갈릴리로 돌아가 외치기 시작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가장 처음 외친 복음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최초 기별이자, 중간 기별이며, 또한 끝의 기별이었다. 그야말로 초지일관(初志一貫)된 기별이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기별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핵심이었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기별의 참된 뜻이 뭔가 하는데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다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친 이 기별의 뜻을 캐는데 그들의 관심을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종말관’(Jesus’ eschatology)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문제였다. 이런 학자들의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슈바이쳐의 ‘철저적 종말관’ -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의 당대에 세상 끝이 이를 것으로 믿고 거기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보내면서 ‘이스라엘 동리를 다 돌기 전에’ 세상이 끝나리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도 돌려대라는 등의 가르침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으니 그런 일로 따지고 다툴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윤리는 세상 끝이 오기 전에 일시적으로 잠깐 적용되리라고 생각된 ‘중간윤리’(interim ethics)였다는 이론이다. 2) 다드의 ‘실현된 종말관’ - 영국 신약학자 다드(C. H. Dodd, 1884~ 1973)는 예수님이 미래에 올 별도의 종말을 기다리지 않고, 그가 실행하는 활동이 바로 천국의 건설을 위한 것이므로, 신천국은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22:28)고 한 말이나 그 비슷한 발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는 선언은 “천국이 이르렀느니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쿨만의 ‘구속사적 종말관’ - 스위스 신학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은 예수님이 그의 활동으로 천국이 ‘이미’(already) 시작되었지만 ‘아직’(not yet) 완성되지는 않았으므로 그는 스스로 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 풀이했다. 4) 불트만의 ‘실존적 종말관’ - 독일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예수님이 임박한 종말을 가르친 것은 일상적 시간이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적 ‘결단’을 촉구하는 시각이 임했음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라 해석했다. 5) 보그의 ‘비종말관’ -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를 비롯하여 최근의 예수 세미나 학자들 중에는 예수님이 종말론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천국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핵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종말을 기다린 그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 스스로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견해다. 6) 필자의 ‘환기적 종말관’ - 필자는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했을 때 ‘회개’가 핵심이라고 본다. 이것은 ‘회개’라는 원문 ‘메타노이아’가 의미하듯 우리 내면의 ‘완전한 의식의 개혁’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은 이런 의식 개혁을 촉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천국의 임박한 도래를 환기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천국이 가까워 왔으니 의식 개변의 체험을 하라”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체험한 의식의 변화를 다른 사람에게서도 보기를 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7) 기타 - 이 외에도 예수님이 말한 ‘천국’이란 결국 상징적인 것이라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 자아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라 볼 수 있다는 입장 등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며 3년 정도를 보냈다.7) 그는 자기의 말을 받아들이는 열 두 제자들을 모았다. 그 중에는 특히 어부들이 많았다. 열 둘이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라 할 수 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 등 열 두 남성 제자들 이외에도 그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 등 그를 따르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건설을 위해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말하라고 가르쳤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고8)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고 하였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중의 나는 새나 들의 백합화처럼 특별히 스스로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하늘 아버지께서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이보다 훨씬 귀한 너희 인간들일까 보냐 하는 생각이었다.(마6:25-34)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철두철미한 신뢰에서 오는 느긋함 아닌가.9) 노자(老子)를 연상하게 하는 말씀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가르칠 때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물을 포도주로 만든다든가 나병환자나 눈먼 자, 혈루병 앓는 여인 등 병든 사람들을 고친다든가 귀신을 쫓아낸다든가 죽은 사람을 살린다든가 물 위를 걸어 다닌다든가 광풍을 잔잔하게 한다든가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5천명을10) 먹인다든가 열매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복음서에서는 이런 것들이 새로 임할 ‘왕국의 징조’(표적과 기사, signs)라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로서 가히 ‘파격적’(subversive)이었다. 그는 유대교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로 변질시킨 종교지도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든가 ‘독사의 자식’이라는 등의 말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15:1-20, 23:27-33 등) 나아가 그 당시 사람들이 모두 히브리 성서 『레위기』(19:2)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모두 거룩해야 한다는 ‘정결제도’(purity system)를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고 거기 매여 있을 때, 예수님은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6:36)고 하는 ‘자비’의 가르침을 그의 중심 가르침으로 삼았다. 그는 병든 사람, 죽은 사람, 피 흘리는 사람, 불의한 사람, 천한 사람 등은 불결한 사람, 부정 타는 사람들로 취급되어 기피 대상이었던 그 당시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나병 환자, 죽은 사람, 혈루병 앓던 여인 등 누구라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회적 위치, 인종, 종교에 따라 누가 의롭냐 거룩하느냐 깨끗하느냐 바르냐 하는 것이 사람을 대할 때 따져보는 표준이었던 세상에서 그는 이런 차별과 장벽을 허물고, 오로지 누가 고통을 당하느냐 하는 것 하나를 표준으로 삼고 고통당하는 사람과 스스로 고통을 함께 하는 ‘자비’를 실천하고 가르쳤다. ‘자비’에 해당되는 영어 ‘compassion’이 어원적으로 ‘아픔을 함께 한다’는 의미라면, 예수님은 실로 이런 ‘자비’의 스승이었다. 그의 ‘밥상 교제’(table fellowship)에는 창녀나 세리 등 그 당시 부정 탄다고 천시되고 기피되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예수님에게는 제도나 규례 같은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었다. 제도나 규례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막2:27)고 한 그의 말에서 이런 태도가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최후의 심판에서도 이처럼 정결하느냐 거룩하느냐 제도나 규례를 성실히 따랐느냐 하는 따위 외부적인 표준과 상관이 없이 ‘사람들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등(마25:35-36) 얼마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잘 섬겼느냐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하였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기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김의 자세, 그는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실증했다. 이런 사랑과 자비와 동정의 가르침은 물론 현실적으로 실천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고 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의 사람, ‘신 의식(God-consciousness)’으로 변화된 사람,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결국 윤리적인 단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차원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항은 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아바’는 ‘아버지’보다 더욱 친근한 말로서 그가 하느님과 관계를 어떻게 파악했던가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가르치면서 ‘비유’(譬喩, parables)를 많이 사용했다. 비유는 가르침의 핵심을 짧은 이야기로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사람들이 그것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핵심을 스스로 더욱 깊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11) 그가 말한 비유 중 많이 알려진 것으로 탕자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이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 어느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먼 나라로 가 허랑방탕(虛浪放蕩)하며 돈을 다 쓰고 돼지 밥으로 배를 채우다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니 아버지가 뛰어 나와 옷을 입히고 자기 반지를 빼서 그에게 끼워주는 등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받아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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