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웰 다잉'의 한 해석 / 이찬수 3 부활의 일반적 의미

필부 2006. 6. 20. 10:35
 

부활, '웰 다잉'의 한 해석 / 이찬수 부활의 일반적 의미 부활 개념은 좀 더 세심한 이해를 요청하는 부분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에 의해 “다시 일으켜졌으며”, 그처럼 모든 인간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일으켜질 것”이라고 믿는데, 이런 식의 부활 개념은 그리스도교 성립의 근거이자 핵심이면서도 수천년 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힌 문제이기도 하다. 왜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주지하다시피, 부활은 역사적 인물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듯이 우리의 몸도 다시 살게 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할 때, 그 살아남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일반 그리스도교인은 예수의 부활을 육체의 생물학적 소생(蘇生)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생은 필연적으로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이승의 삶의 단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예수가 살았다가 다시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활은 일단 소생과 다르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의 부활은 죽음이 허무한 파멸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서 모든 역사의 궁극적 의미가 드러났음을 뜻하기 위해 사용된 다소 ‘신화적’인 언어이다. 예수의 죽음이 도리어 생명의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에서 진정한 생명이 유지되어가는 모습을 체험한 제자들로부터 죽음의 사건이 더 큰 생명을 드러내 보여준 역설적 사건일 수 있음을 뜻하는 부활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성서에서는 예수가 부활 후에 승천(昇天)했다고도 말한다. 예수가 하늘, 즉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는 뜻인데, 그것 역시 예수가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갔다는 강력한 신앙의 표현이다. 그러고 보면, 부활이나 승천이나 결국은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이다. 예수 사건이 제한적 시공간 안에 머물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며, 죽음 역시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생명의 사건이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종국적으로는 부활이 모든 인생의 궁극 목적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다. 로핑크의 말을 한 번 더 가져와보자. “부활이란 전인간,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체험과 자기 과거 전체, 자기의 첫 입맞춤과 자신의 첫 눈(初雪), 그가 이야기한 모든 말, 그가 행한 모든 업적과 함께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뜻한다. 이 모두는 어떤 추상적 영혼 그 이상의 어떤 무한한 것이기에, 죽음을 통하여 사람의 영혼만이 하느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활이란 영혼만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행한 모든 행위가 하느님과 직접 대면하게 되는 어떤 사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활 관념은 원칙적으로 예수에 대한 신앙적 조명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예수에게서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되었을까? 부활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확인하려면 역사적 예수의 삶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