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꽃샘 나들이

필부 2006. 4. 27. 09:48

소나무 숲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자지러지는 절규에 가슴이 텅 비워지는 경험을 해 본 일이 있는가. 그것을 안다면 그대는 바람 부는 날, 소나무들이 우거진 산기슭을 기어오르진 않으리라. 소나무들은 홀로 우는 법이 없다. 슬픔도 동병상린이라 합창으로 시작하여 서로의 가슴이 후련해질 때까지 목 놓아 울어 준다. 남을 위해 울어주는 소나무들 덕분에 한바탕 따라 울게 되고, 울음이란 울수록 더 울고 싶어지는 속성이 있어 눈가가 물러지게 울어버리고 만다. 울다 지치면 가슴이 다 녹아 없어진 듯 아무 생각이 없다가 눈물로 씻어낸 마음 때문에 풀어헤쳐진 앞섶을 단단히 단속하게 된다. 비워진 것 하나 없이 울기만 하고 오기에 바람 부는 날은 숲에 가는 법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나 아닌 그 누구를 위해 진정 울어 주고 싶을 때, 그 때 소나무 숲으로 가야 한다. 오랜만에 아이들 엉덩이만한 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첩첩 산중을 찾았다. 전화선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라 세상과 두절된 듯 한가로운 곳이다.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만 보이고 인적도 드물어 숨겨두었던 여인을 꺼내보듯 마음 손질하기에 안성맞춤인 산골이다. 손윗동서가 은퇴를 하여 과수를 심어놓고 그것들을 가꾸며 소일하기에 아무런 부담 없이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할 겸 가끔 찾곤 한다. 개울 물 따라 걷기도 하고 신발 끈을 동여매고 산을 기어오르다보면 세상사가 편안하게 보인다. 이름모를 풀꽃들이며 새소리, 바람소리가 나를 풀어두게 한다. 주인도 모르는 봉분들 곁을 지나면 산다는 일이 다소는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잡목 사이에서 키 자랑하는 소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적자생존의 순리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한 가지 거부도 없이, 하늘 아래 햇빛을 받는 나의 존재를 한가롭게 지켜볼 수 있다.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들을 원 없이 생각하는 과욕도 부려보게 되고. 모든 게 편안해진다. 그래서 가끔 찾아오곤 한다. 며칠 전 다녀가라는 전갈을 받고 덕분에 마음 빨래나 하고 오자해서 달려왔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꽃샘이라지만 너무나 표독스럽게 눈발을 뿌리며 유난을 떤다. 질투심으로 눈이 먼 여인네 심술과 같다.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는, 지독한 시샘이다. 꽃샘 덕에 맨가슴을 드러내지 못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겹겹이 옷가지로 가슴을 동여맨 채 소나무 숲에서 울다가 왔다. 꼭 한 사람 그 녀를 위해 울어주기로 했는데 소나무 숲에서 피다가 움츠린 진달래의 애잔한 모습만 보고 왔다. 진달래만. 흐르는 곡은 Hope Has A Place - Enya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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