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는 울긋불긋 늦가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잔바람에도 새들을 흩날린다. 근심거리를 털어내듯 떨어져 내린 가랑잎은 쌓여가고, 지나는 사람들 발길에 밟히고 흩어지며 숨을 죽인 채 부서지는 낙엽 따라 가을은 허물어진다. 연초록 아기 손으로 싹을 키워 뜨거운 열정에도 초록 손만 비벼대더니 가을엔 꽃으로 피어 푸른 하늘을 지켜보다가 새가되어 허공을 맴돌다 땅 위에 내려앉아 숨을 거둔다. 꽃비가 되어 쏟아진 꽃잎들을 어찌 모른 체 밟을 수 있겠는가. 가다 멈추고, 주춤거리며 발길을 옮겨가며 나는 가을을 한줌씩 가슴에 주어 담는다. 꽃구경 나가는 봄과 가을엔 길을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내미는 발끝마다 아픔이 채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길에 나서 무르익은 가을에 시선을 두면 어느새 나는 속이 다 타버린 한그루 나무가 되어 세월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봄이면 다시 태어나듯 눈을 뜨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엔 꽃을 피우듯 단장을 하는, 이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피부를 드러낸 채 벌거벗고 깊고 깊은 겨울잠에 빠져드는 나무처럼 나, 그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고목이 되어가는 것이 나, 그대가 아닐까.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할 수 있다는, 필요도 없는 은혜를 받은 한 그루 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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