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정 가디건을 꺼내 어깨를 다숩게하고 가을 풀밭 따라 강 길을 걷는다. 말이 강 길이지 조금 넓은 개울 따라 걷는 길이다. 가을빛이 물드는 풀밭을 눈시울 붉히는 노을아래 걷는다는 일은 사소한 허무처럼 가벼운 슬픔을 씹어보는 일이다. 가을이 낙엽 쌓이듯 마음을 덮는다.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떠나가는 중인가. 진정 나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다정했던 사람들에서 떠나와 나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울컥 치미는 격정에 가슴은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숨을 죽인다. 세월이란 그렇다. 아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순간순간이 이어져 흘러가는 것이기에 다시는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립다 애 태우는 사랑하던 사람도 그 순간 속에 묻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은 그 순간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아름답던 그 순간과 그 순간 속의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떻게 지나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내가 입술을 깨물도록 그리워하는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하늘아래 숨을 쉬고 있는 그녀는 흘러온 세월만큼 변하고 변해 다시 태어난 또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목이 막히도록 그리운 것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인간의 습성 때문일까. 오늘은 유독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가을 탓이다. 노을 때문이다. 내 인생의 황혼기라서 그렇다. 차가워 보이는 잔잔한 물길에 마음을 씻어보지만 눈물로 얼룩진 얼굴처럼 마음은 더욱 아려온다. 땅거미가 밀려온다. 가자. 가자. 등 뒤에 순간하나, 슬퍼하는 나를 떨어뜨려놓고 나는 집으로 향한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
'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을 길목에서 (0) | 2008.10.25 |
---|---|
[스크랩] 궁리 (0) | 2008.10.16 |
[스크랩] 마리님께 (0) | 2008.09.24 |
[스크랩] 세실님께 (0) | 2008.09.12 |
[스크랩] 술 마시는 가을엔 (0) | 2008.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