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궁리

필부 2008. 10. 16. 15:35
 

언제나 그렇듯 오늘의 풍경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를 보듬고 있는 나의 세계를 나는 풍경이라 일컫는다.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 햇살을 삼켜버린 자욱한 안개 속으로. 흐릿한 몸체로 꿈틀거리며 다가서는 물줄기, 강물 따라 가을이 물씬 물든 풀밭은 쓸쓸한 적막이 흐르고 있다. 가을이 흘러가는 건가, 적막처럼 내 인생이 떠내려가는 건가. 가을 강물이 바다로 밀려가는 동안 움츠린 나의 가슴은 날개만을 집착한다. 날아야 한다. 푸른 창공을 날기 위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아니, 무슨 생각으로 지탱하며 겨드랑이의 날개를 키워야 하나. 하루 하루를 음모 속에 보내며 실뭉치에서 실을 풀어내듯 사념조각들을 끄집어낸다. 편린처럼 스치는 생각들로 잡동사니를 모으듯 구차하게 꿈을 꾸게 하지만 가을은 속살을 태워가며 익어가고 있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앞날은 꿈길이고 지나온 여정만이 과거라는 기억을 남긴다. 어쩌면 지나간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은 아닐지. 자의든 타의든 세월 속에서 나름대로 분주하게 살아가며, 그렇게 살아가며 남겨진 유산이 지나온 발자취 뿐이고...... 흘러보낸 흩어진 발자국을 줍고 또 줍고. 좋든 싫든 가진 게 나의 족적 뿐이니 나는 나의 과거에서 조명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나온 세월이 회한으로 눈물젖게 하는 것이든 자랑스럽게 가슴을 벌릴 자부심이든 모두 내 자신이 소유한 재산이다. 가을이 농익는 강가에서 하릴없이 무엇으로 날개짓을 할 것인가 궁리해 본다. 가슴이 온통 붉게 단풍이 든다. 타고, 또 타면 무엇이 남을고........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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