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말에서는 / 이향아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낙옆 마르는 냄새가 난다. 가을 청무우밭 지나서 상수리숲 바스락 소리 지나서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오소소 흔들리는 억새풀 얘기가 들린다 추억이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마냥 그립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이여, 지나가서 남은 것이 없는 일이여, 노을은 가슴속 애물처럼 타오르고 저녁 들판 낮게 깔린 밥짓는 연기, 추억이라는 말에는 열 손가락 찡한 이슬이 묻어 있다. 어제밤은 어둠이 비가 되어 내렸고 나는 밤을 지새우며 검정물에 젖었다. 추억이라는 하얀 물감에 물들어 꼬박 날을 새고말았다. 가슴 언저리가 간지러워 단추를 풀어헤치고 칼바람보다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차가운 검정 빗물을 가슴에 쓸어담았다. 다 타고나면 재가 된다는데 아직도 태울 게 남았나보다. 그립다는 건 그리워하다 끝이나는 것을 그리워할 따름이란다. 그래서 추억이라 일컬어지는 안타까운 과거사는 허공에 손을 젖는 일. 남은 것이 과거뿐이니 부등켜안를 게 추억 뿐. 죽는 날까지 뒷걸음질로 허둥대야 하는가. 밤새 사르고 태워 숯검정이 된 가슴에 흰 붕대를 감듯 회한으로 허릿띠를 한다.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누구를 사랑하며 늙어갈 것인가. 사람은 하나의 꽃나무이고, 나무을 가꾸는 이는 다름아닌 바로 자신이다. 죽는날까지 사랑으로 나를 손질하리라 다짐했건만 검정비에 젖고보니 그 모두 허사가 된다. 추억이란 자신이 출연한 영화 한편일 뿐이다. 영화라는 가설을 보며 눈물을 흘리듯 몰입하면 할수록 현실과 튼튼한 끈으로 이어진다. 그렇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인기 절정일 때 출연한 영화 한편이다. 밤비 덕분에 눈섶만 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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