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면 '절대적 종교주의 형태'와 '상대주의 종교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절대적 종교 형태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천지만물의 창조주인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여러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자유롭게 조절하지 못하며,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게 인간이라면, 차라리 절대자라는 허상을 세워놓고 그에게 무한한 복종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게 편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하면, 자신의 책임마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관념에 예속화시켜 자신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적 입장을 취하는 불교에서의 '부처님'이란 창조주나 '신'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절대자를 대하듯 부처님을 이해하려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깨달음'에 대한 완전한 곡해이며, 불교 사상과도 빗나간 것입니다. '부처님'을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싶은 이유는 아마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무지 내지는 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편 인간은 합리적 노력으로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없을 때, 절대적인 무엇인가를 상정해 놓고 그것에 매달리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부처님께서 부정한 신 개념을 오히려 '부처님의 불가사의 위신력'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결국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타마 부처님께서는 "자신만이 자신의 안식처이다. 다른 누가 있어 대신 안식처가 될 수 있겠는가" 하시며 인간 위에 군림하며,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존재나 힘에 대해 부정하셨습니다. 이 말은 각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행복을 추구하라는 뜻으로써 관념 속에나 존재하는 신과 같은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창조주는 자신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깨달으신 뒤 우리들에게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길은 우리들 스스로 가야 하는 것이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을 마신 사람만이 갈증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잇는 것처럼 말입니다. BBS 대구 불교방송 아침저널 2부 범수스님의 칼럼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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