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2)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아담과 이브 신화에 나타난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1: 자의식의 발현 우선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이 소위 낙원이라는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은 채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벌거벗은 생태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기자(記者)는 적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이들이 벌거벗었다는 것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벌거벗었다는데 이들은 왜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이들이 아직 자기개념이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듯이 아주 어린 아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벗고 다니는 데에 아무런 수치심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아직 자기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3) 자기 개념이 생겨도 수치감이나 죄의식을 가지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사회화 과정 같은 것이 들어가고 복잡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수치심이나 죄의식 같은 것은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생길 수 있는 인간의 특수 기능인 것이다. 이게 바로 틸리히가 말한 '꿈꾸는 순진무구함'의 상태이다. 이때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그저 혼몽 상태이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혼몽상태에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니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이런 상태로 있다가 자의식을 갖고 인간이 되지만 동물은 그 상태로 일생을 보낸다는 것뿐이다. 동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동물일 뿐이다. 이런 상태를 구약의 기자들은 낙원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에덴에서 신과 같이 있으니 낙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에덴 동산에서 있는 상태를 낙원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 문제도 중요한 주제인데 이것은 조금 있다가 다시 거론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어떤 과일을 따먹게 되는데 이것은 신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한 금단의 열매였다.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 열매를 먹게 한 것은 뱀이었는데 이 뱀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하는 것은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금기를 깬 것이 남성(아담)이 아니라 여성(이브)이라는 사실도 이 신화나 서구 기독교(혹은 유대교)를 이해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주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뱀이 '이 열매를 먹으면 (신처럼) 눈이 밝아지고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말한 것은 주의를 요할 만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도 다음 기회로 그 설명을 미루고 여기서는 아담과 이브가 열매를 따먹은 뒤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만 보기로 하자. 이 상황은 이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 열매는 이브가 먼저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준다. 아담이 먹고 나니 그들에게 변화가 생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나온 《성경전서》를 보면 '그러나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라고 되어 있다. 이 결정적인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라는 문구이다. 이에 비하면 '눈이 밝아졌다'느니 '나ant잎으로 몸을 가렸다'느니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겪은 이 사건은 인간의 자의식이 생기는 과정을 신화를 통해 매우 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인간의 자의식이 생기는 과정을 묘사한 이야기는 더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한글 번역본으로는 이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을 제대로 잡아내려면 영어 번역본이 훨씬 좋다.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라는 대목의 영어 번역은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naked를 괄호 안에 넣든지 생략해보자. 그럼 어떻게 변하는가?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가 되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were) 것을 알았다'가 된다. 이 말이 무엇인가?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구약의 기자는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다고 표현한 것인데 이것은 인간에게 자의식이 생기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아담에게 자의식이 어느 날 느닷없이 작동하면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담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된다. 그제서야 비로소 아담은 이브가, 이브는 아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벗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기자는 이들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고 적고 있는데 선과 악 같은 도덕의식은 모두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으로 자의식이 없으면 인간에게 생길 수 없는 의식이다. 물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은 자의식이 생긴 바로 직후부터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회화 과정을 겪은 다음에야 가능한 것으로 여기서 그 주제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삼가자. 이렇게 해서 인간이 탄생한 것인데 유대-기독교에서는 이 사건을 인간의 타락이라고 해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교리를 구축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내린 해석의 의미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해석은 다소 지나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가 신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그 벌로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본 것인데 이 해석에는 심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 해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이 죄를 저지르려면 우선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자유의지와 책임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는 내가 있은 다음에 지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란 개념 자체가 없는데 무슨 죄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통상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의지를 사용하여 신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열매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에게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타자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이 이브를 인식한 것도 열매를 따먹은 다음에만 해당된다. 그런 상태이니 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의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라는 내적 개념이 없는데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이다. 자기 개념이 생기고 그 다음에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울 것 없이 유아를 생각해보면 된다. 엄마 품속에서 젖을 먹는 아기에게 무슨 자유의지가 있고 무슨 죄를 저지를만한 능력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에덴 동산 사건은 인간의 타락이라고 해석할 게 아니라 인간의 자의식이 발현된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 시작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작을 쓴 사람은 앞서 인용했던 켄 윌버이다. 윌버는 인간의 의식이 발전되는 과정을 적은 책을 저술하면서 제목을 "Up From Eden"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을 "에덴으로부터의 도약"이라고 번역했다. 윌버는 이 책에서 인간은 에덴에서 타락한 것(Fall From Eden)이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된 것, 즉 그곳에서 도약한(up)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나는 이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 이제 이렇게 해서 '똥오줌 못가리던' 아담과 이브는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그 다음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신화의 기자는 그 다음 일에 대해서도-본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훌륭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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