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겨울밤을 뒤적이다

필부 2006. 5. 20. 21:26
 

이내가 내리듯 겨울 안개가 어둠을 감싸고 있다. 사위는 컴컴한 어둠과 콧등을 시리게하는 차디찬 추위 뿐이다. 들녁 건너 마을들도 잠이 들어 불빛만 눈을 떴다. 유리창에 얼어붙는 불빛을 보며, 어둠과 영하의 적막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야간열차는 꿈틀거리며 긴 꼬리를 달고 급히 달려왔다 사라져 버린다. 겨울 밤은 죽음보다 무거운 무게의 외투로 내 육신을 덮는다. 미동도 못하고 창가에 매달려 마음으로 끝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허용된 소리 외에 들리는 것도 없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더듬는 갈구라는 길나들이 뿐이다. 잠들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떠나는 여행이다. 神의 손목도 잡아보고, 지친 영혼을 위해 간구도 드려보고, 사랑하고 싶은 여인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가난하게 살아온 지친 삶에 눈시울을 적셔 본다. 결국 술취하듯 몰두하고 싶은 것이 인생이었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였기에 부족한 부분만이 커보이고, 마음 편하게 잠시도 쉬지 못하며 그렇게도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지 모른다. 깨끗한 순백의 바탕에 발자국을 남기듯 검정 먹물로 인생의 쉼표, 느낌표, 그리고 마침표까지 찍고 싶다. 상념의 나래가 펼쳐지는 겨울 밤은 길기만 하다. 그래서 이마만 무거워진다. 겨울 밤, 오늘은 별도 없다. 별빛이 내리지 않는 겨울 밤이라 잠 못 들고 생각의 실타래만 하염없이 풀고 있다. 괜스리 겨울밤을 뒤적이고 있을 뿐이다. 2003.01.18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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