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개념의 기본적 이해 - 심상태 (수원 가톨릭대 교수/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3.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신앙이 당신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규정하여 왔다. 그런데 교회가 공식적으로 내리는 신앙규정 자체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나타나지 않으나 규정양식에 있어 차이를 드러내고 결과적으로 개별 신앙인들이 신앙을 이해하는 데에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만드는 특유한 풍토가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규정 자체도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닌다. 1. 교회가 로마 제국의 박해를 끝내고 최초로 소집되었던 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naenum, 325)에서 교부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정식으로 입장을 천명하였다: “우리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지어내신 전능하신 성부, 한 분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한 세기 뒤에 소집되었던 칼케돈 공의회(Concilium Chalcedonense, 451)에서 교부들은 신자들이 신앙을 고백하도록 가르친다는 정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분이자 동일한 분이심을 모두가 일치해서 고백하도록 가르치는 바이다”. 신앙의 성격이 역사 속에서 발생한 하느님의 구원행업에 대한 고백의 자세로부터 고백에 관한 올바른 가르침이 되고 ‘고백형식’에서부터 믿도록 구속력을 지닌 ‘교리정식’으로 되는 국면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중세기를 거치면서 교계 안에서 정착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부터 수많은 신앙조문(信仰條文)들로 세분화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교회는 하느님과 교회 자신의 권위에 입각하여 모든 신조문들의 구속력을 강조하였다. 서방세계에서 종교개혁 발발이후에 교회는 프로테스탄티즘을 거슬러 구원의 도구들인 교회와 성서, 그리고 교직(敎職)에 관련된 진리들을 본연의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 진리보다 오히려 더 강조하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마리아에 관한 문헌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문헌들보다 더 많이 반포되는 일들이 지난 세기와 금세기에 발생하였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교계 안에서 구원을 위해 누구나 믿어야 하는 기본진리들과 신자 개개인의 자유에 맡겨도 되는 기본적이지 않은 지엽적 진리들을 구별하려는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교황 비오 11세는 이러한 환원시도들에 대해서 모든 신조문 뒤에는 하나요 동일한 하느님의 권위가 자리잡고 있어서 일체의 구별이 용납되지 않고 똑같은 신앙으로 고수해야 한다고 칙서 ⌈죽은 이들의 영혼⌋(Mortalium Animos)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회 당국이 정통교리를 이렇게 강조하게 되면서 결국 신자들은 교리체계를 전체적으로 수용하든가 아니면 전적으로 의문에 처하든가 해야 하는 기로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2. 교회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응답으로서의 신앙을 ‘복종’(oboeditio)으로 규정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가르침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통으로 천명되고 새로 반포된 ⌈새교리서⌋에서도 개진되고 있다. 물론 두 공의회에서 천명된 입장에는 구별되는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신앙에 관한 헌장 “하느님의 아들”(Dei Filius)에서 신앙이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지성과 의지로 전적으로 순명하는 처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와 주님이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예속되고 창조된 지성은 창조되지 않은 진리에 온전히 종속되기 때문에 우리는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 안에서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명을 드러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데, 이는 우리가 그것의 내적 진리를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간파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기만하실 수도 기만당하실 수도 없는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권위에 입각하여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주기 때문이다’(히브 11,1)”. 이 공의회의 헌장본문들은 신앙이 인격적 관계로서보다는 ‘virtus, gratia, revelata, donum Dei, opus ad salutem pertinens'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사상적(事象的) 내지 사물적(事物的) 범주로 파악되고 있으며, 기적이나 예언과 같이 외적 근거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역사와 사회, 세계와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성은 언급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성취되는 신앙의 실천연관성은 신앙의 인식국면에 뒷면에 가리워 있다. 그리고 이 인식도 지성주의적 국면으로 협소화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앙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로마 16,26; 로마 1,5; 꼬린 후 10,5-6 참조)을 들어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이 주신 계시에 자의(自意)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 의탁하는 것이다. ” 여기서 신앙은 인간과 하느님의 만남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신 자신을 전달하는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양도하는 인간이 만난다. 그리고 신앙은 인간이 지성과 의지, 그리고 마음을 의탁하는 전인적 행위로 파악된다. 무엇보다도 신앙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이어서 말과 현실 사이에 분리가 극복이 되어 있으며, 참된 말씀이 모든 실재의 참 근거 안에서 지양되어 있다. 그리고 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께 직접 정향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앙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외적 논증’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그렇다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강조된 기적과 예언과 같은 외적 표징을 통한 계시의 증거가 부정되거나 폐기된 것은 아니라 해도 약화된 자리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신앙의 확실성을 실증주의적 척도로 측정하려는 시도는 탈락되었다. 그리고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이 참이라고 믿는다’(ab eo revelata vera esse credimus)라고 진술된 데 비해, ⌈계시헌장⌋에서는 신앙의 동의가 ‘하느님으로부터의 계시’(revelatio ab Eo data) 내지 ‘계시하시는 하느님’(Deus revelans)로 표현되고 있어 신앙의 인격적 하느님과의 관계성이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앙의 인격적 관계 차원이 전면에 나타나고 사상적이고 사물적인 차원이 약화된 것이 확인되는 한편, 신앙이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복종으로 규정되는 한에서 이전의 교회 가르침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새교리서』(Catechismus Ecclesiae Catholicae, 1993)에도 신앙은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전적으로 종속시키고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의 전 존재로서 동의하는 처신으로 규정된다. “인간은 신앙을 통해서 온전히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순종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동의를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 성서에 의거 ‘신앙의 순명’으로 규정된다(로마 1,5; 16,26). 그리고 여기서 신앙 속에서 ‘순명한다’(ob-audiere)는 것은 청취한 마씀에 자의로 의탁함을 뜻하는 것이라 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명의 모범으로 아브라함의 순명이 소개되고 마리아는 순명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한 분으로 묘사된다. 특히 마리아의 신앙은 전 생애동안, 아들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마지막 시험에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되다고 칭송받음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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