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불교에 있어 존재와 인식 그리고 실천 / 최인숙 3. 인식하는 자아 앞장에서는 우리의 인식 대상을 칸트와 불교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논했다. 칸트에서 인식 대상은 오로지 현상일 뿐이며, 현상은 물체적 현상과 심리적 현상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리고 원시불교와 대승불교(중관사상과 유식사상)에서 인식 대상은 연기의 대상이며, 연기의 대상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고 그 자체로는 공이라고 했다. 연기의 세계에서는 자아도 공이고 대상적 존재도 공이다.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지각되는 내지는 인식되는 대상에 대해 논했다. 그러면 이 대상들을 인식하는 주관은 어떤 존재인가? 칸트와 불교에서 각기 어떠한지 알아보자.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정신(마음·이성·영혼)의 개념은 형이상학의 핵심적 문제에 속했다. 정신은 물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서(이원론), 혹은 물질을 포함한 이 세계의 궁극 원인으로(유심론)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한 경우, 정신은 궁극적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순수한 상태에 이르게 될 때,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물론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정신을 그 자체로서 인식할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정신은 인식 가능한 존재로 가정되었다. 칸트는 서양의 전통적인 합리론적 견해에 대해 논박한다. 다른 사람들의 정신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정신조차도 인간은 오로지 ‘현상’으로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앞에서 논했듯이, 칸트에서 현상은 우리의 인식 구조(시공의 감성형식과 사고형식)에 인식 재료(물질적 재료나 심리적 재료)가 주어졌을 때, 이 양자(인식 구조와 재료)가 서로 ‘관계함’으로써 인식되는 ‘대상’이다. 심리적 현상의 경우, 마음의 다양한 상태들(무엇을 생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등의 마음 상태들)이 시간형식과 사고형식과의 관계에서 각기 ‘개별적인’ 마음 상태로서 인식된다. 이렇게 인식되는 심리적 현상들은 마음 자체, 주관 자체가 아니다. 마음의 다양한 계기일 뿐이다. 물론 칸트에서 각 개인의 마음 자체, 주관 자체가 논의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순수이성비판》의 인식론에서 주관 자체의 문제가 빠진다면 그 인식론은 아예 성립할 수도 없다. 물리적 대상이든 심리적 대상이든 그것이 현상으로서 인식될 때, 감성형식과 사고형식의 근거로서의 근원적 자아, 선험적 자아가 언제나 더불어 기능한다. 이 선험적 자아가 항상 동일한 자아로서 ‘더불어’ 활동하지 않는다면,32) 개별적 대상 및 사태에 대한 지각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동일한 선험적 자아만을 독립적으로(개별적 지각과 관계없이) 인식할 수는 없다. 칸트에서 선험적 자아는 개별적 대상 및 사태의 지각과 ‘더불어서만’ 활동하는 것이다.33) 32) 자신의 인식 활동(물리적 지각과 심리적 지각)을 ‘스스로 의식함’으로써 ‘동일한 자아’의 활동은 ‘의식된다’. 칸트에서 모든 개별적 지각, 인식은 결국 자기인식, 자기의식(Selbstbewu쬼ein)이다. 33) 칸트, 《순수이성비판》, B 131-132, A 341/B 399, B 406, A 345-346/B 404 참조. 이렇게 해서 칸트는 전통적 합리론자들이 주장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정신, 이성, 영혼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불교에서 인식 대상은 오로지 연기의 대상이다. 그 자체로 각기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독립적인 실체적 존재를 인식할 수도 없지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처음부터 실체적 존재(각기 自性, 본질을 지닌)가 아니고 연기의 존재이다.34) 34) 이에 비해, 칸트에서는 우리의 인식 대상인 ‘현상’의 배후에 물자체를 인정함으로써, 철저히 연기의 존재만을 인정하는 불교사상과 존재 문제에서 차이를 보인다. 불교에서는 인식 대상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 주관도 단지 연기의 존재일 뿐이다(我空). 연기의 존재인 자아의 배후에, 혹은 근저에 실체적 정신, 마음, 영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논한 바에 따르면, 유식학에서는 원시불교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의 과정을 더 철저히 분석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아, 즉 인식하는 주관이라는 것도 결국 연기의 현상이며 공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사물 및 사태를 지각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이 어떠한 흐름, 변화를 보이는가를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유식사상은 이전의 그 어떠한 불교 이론보다도 자아 문제에서 치밀한 이론을 제시했다. ‘대상’에 관한 모든 인식은 사실은 ‘식’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지식은 지식 내부의 현상이며, 지식은 지식 자체를 인식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이 자기 인식을 본질로 한다는 것은 유식학파의 기본적인 입장의 하나이다.35) 35) 服部正明 외, 《인식과 초월》, 이만 옮김, 1993, 민족사, 87∼94쪽 참조. 이렇게 볼 때, 칸트가 현상 배후에 물자체 개념을 유보해 두었다는 점에서는 불교사상과 차이를 보이지만, 칸트의 선험적 자아 개념과 유식학파에서의 식의 주체인 자아, 특히 알라야식으로서의 자아 개념에서는 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36) 36) 칸트에서의 대상 인식은 현상으로서의 인식이며, 모든 현상으로서의 인식에는 언제나 선험적 자아가 동반하며, 대상 인식은 결국 선험적 자아의 자기인식이다. 그리고 유식학파에서의 대상 인식은 연기로서의 인식이며, 연기로서의 모든 인식에는 언제나 알라야식이 동반하며, 대상 인식은 결국 알라야식의 자기인식이다. 그리고 칸트에서 선험적 자아가 선험적 자아만으로(개별적 대상 인식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의식될 수 없듯이, 유식의 알라야식도 개별적 대상 인식과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 의식될 수 없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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