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선방 / 조성원 굳게 닫힌 산문이다. 일반인은 물론 불자들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곳곳에 내 붙은 출입금지 팻말이다. 굳이 그 글귀가 아니더라도 천지가 눈 길 하나 마주칠 일 없는 스스로의 세계에 취해 하루 내내 가지런하고 한적한 것이 자연 느껴질 질 것 같은 청정 수행도량이다. 선방에 들어와 화두를 잡는다. 면벽참선이라 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의 본성을 찾아 떠나는 심성의 우주 그 깊은 정진의 세계가 그곳에 열려 있다. 피안의 눈 안에 보이는 것은 가은의 짙은 채색의 가을 들녘인데 선승의 심안으로 본 것은 어떤 마음 어느 풍경일까. 사과 향 맡으며 흩뿌리는 송홧가루 밟으며 문경 땅 봉암사 산문에 들어섰던 때가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은 하안거를 끝내고 걸망을 걸머지고 산철을 맞아 만행 중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토굴로 들어가거나 선방에 남아 문을 걸어 잠그고 미처 채우지 못한 불찰의 여전한 화두에 매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또 다시 맞이할 동안거가 심연의 연꽃처럼 다가오고 있다. 꽃 피고 잎 지는 자리마다 부처님의 향 그득한 구도의 길이다. 선승은 과연 세속을 지웠는가. 그곳에 세속의 잔흔은 없다. 자연과 우주만이 존재한다. 그곳의 기나긴 밤 대웅전을 지키는 것은 자연이고 우주이다. 으스름 달 밤 먼 하늘 별 그리고 선방에 다가서는 침묵의 우주 그리고 대웅전 차마 끝에 바람에 닿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다. 때가 되면 새벽녘 숲은 자연 다시 깨어난다. 붉은 기운이 지축을 오를 때 어제의 자연의 향취는 짙은 안개 되어 날아갔다. 오늘은 다른 석가이고 또 다른 자연의 노래이고 더 깊은 우주의 화두이다. 어제의 자연은 스스로 변하여 오늘의 자연이 된다. 보름간을 쪼아댔다는 소나무 둥지가 다 되었다 싶으니 딱따구리가 신방을 차리고 소쩍새가 어느 틈 밤나무에 알을 낳았다. 들쥐를 부지런히 잡아 나르는 수컷들이다. 어린 것들이 이제 창공으로 날 때가 되었다. 어미는 둥지를 떠나 맞은 편 잣나무 아래서 따라 나오기를 기다린다. 첫째가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둘째가 셋째가. 막내가 둥지 밖을 둘러보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보다 못한 어미가 먹이를 물어 둥지 안에 밀어 넣는다. 이윽고 이틀 만에 여전히 시원찮은 날개 짓이지만 막내가 일어섰다. 하지만 강자는 그곳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부엉은 그 중 약한 상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눈 밝기가 다른 것들에 비해 열배는 더 밝다. 막내는 순간의 틈 부엉이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부엉이에게도 먹여주어야 할 새끼가 자라고 있다. 원앙도 새끼하나 부엉이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 숲속엔 여전히 물가를 노니는 원앙이 있고 울창한 숲 솔 나무를 연실 쪼아대는 까막딱따구리에 적막을 깨는 소쩍새의 울음이 있다. 자연은 그렇게 존재한다. 먹고 먹히고 삶의 투쟁으로서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자연의 시간으로서 때가되니 새끼를 낳고 둥지도 만들고 본능으로 자연을 맞이하여 흐르는 물처럼 자연의 시간을 보내고 사라진다. 자연은 그렇게 순환하는 것이다. 이곳에선 자연히 인간도 하나의 자연일 뿐이다. 번뇌의 삶도 득도의 길도 한 정점으로 모이고 스러지고 또 하나가 되려 한다. 득도의 길은 과연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멀기만 한 나락이다. 이제 일어선다 하였더니 환한 달밤에 여전히 떠오르는 것이 고향의 어머니이고 풀벌레 소리에 따라 우는 것이 마음이다. 그리하여 번민의 티끌로 묻어나는 시냇물 소리에 안타까워지는 것이 미련 남은 삶의 애처로움이다. 요사에 몸 조아리는 객승의 마음이 일 겁을 더하건만 자연은 여전히 적막으로 말한다. 산세가 아름답고 들리는 소리 꾀꼬리같이 곱기만 하고 푸른 하늘이 그대로 투영되어 맑기만 한 시냇물이 만져지듯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본다고 하지는 않겠다. 느끼는 것만으로 느껴 알 것 같다고 하지 않겠다. 차라리 보고 느낀 것은 절벽의 나락 끝 한 면에 불과한 것이라 해둘 것이다. 이제 속세의 너울은 벗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때 그래도 모를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세속은 부질없어 벗어난다 하였더니 이제 객승을 잡아끄는 것이 자연이다. 화두는 이어진다. 자연의 질서로서 그들이 존재하고 산다하니 자연의 고통 받는 삶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하여도 나의 우주는 영속한다 할 것인가. 모를 것이다. 자연에서 보아 온 것들은 그저 순간이요 밖의 조화에 불과한 현상이라는 것을 안다하면서도 알면서도 모른 체 짐짓 자연의 죽음을 숙명처럼 억울하다 할 것인지 아니면 모르면서도 알 것 같은 허울에 쌓여 늘 그 모습 그대로라고 대범으로 일갈하여 느껴 말하여야 할 것이던가. 자연의 섭리를 알지도 모르지도 못한다하여 비어둔다고 하자. 빈다는 것이 현상을 비우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쳐 비우고 물욕을 알아두어 마음을 비우고 다가서는 마음의 영롱한 이슬이라도 된다하는 말인가. 어찌 두어야 할 것이며 비어둔 마음이란 또우주속에서 어찌 흘러가는 것이던가. 그저 모를 일이다. 하얀 눈 내리던 날 문경 가은 땅은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봉암사 선방 오솔길엔 쌀 알갱이 기다리는 자연의 것들이 그 어미 하던 대로 마당 끝에 또 모여들었다. 원앙도 소쩍도 뭐 모를 뭇 새들도 다 같이. 그리고 그 해도 누군가로부터 던져진 쌀 알갱이는 그들의 몫이 되었다. 세속으로서 겨우 말하였다. 빈 마음에 다가서는 자연의 섭리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일까? 힘든 바깥세상이니 그 자비는 차라리 불평등한 것이 온당한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공평 정대함은 자연의 섭리 속에 어찌 정리되어 회자하는가. 굳게 닫힌 봉암사 산문이 오늘 더 두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하여 세속의 눈은 여전히 막막하기도 하여 동안거에 들어갔다는 선승의 심안이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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