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특질 / 최준식 完結

필부 2007. 9. 5. 12:58
 

종교의 특질 / 최준식 10) 종교는 대부분 내면적인 조화(inner harmony)나 심리적인 평안 상태를 약속한다. 우리가 종교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는 종교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지는 데에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이를테면 신에게 완전히 복종을 한다던가, 선행이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던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이 요가에서 말하는 세 가지 길 아닌가 싶다. 지혜의 획득을 중요시하는 즈냐나 요가는 고도의 통찰력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박티 요가는 신에게 향한 완전한 헌신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카르마 요가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일들을 통해서 최고의 행복한 상태로 갈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런 최고의 상태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이든 이런 최고의 상태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11)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내세를 약속한다. 종교에서 유토피아를 설하고 내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세를 설하지 않으면 종교가 아니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종교에서는 내세의 존재에 대해 강한 주장을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아주 정교한 종말론과 내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비록 조로아스타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종말이 오고 그때 비신자들은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한 묘사는 그 생생함이 훨씬 뛰어나다. 춥기가 이를 데 없는 한빙 지옥이나 온 산이 칼로 뒤덮여 있다는 칼산 지옥이니 하는 것들은 신자든 비신자든 그 신앙에 관계 없이 그가 생전에 행했던 악행에 대해 정확한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역사가 오래 된 기성종교에서는 이와 같이 내세의 존재에 대해 강한 주장을 하는 반면 갖 생겨난 신종교에서는 내세보다는 지금 이 땅에 유토피아적인 시대(천년왕국)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20 세기 전후로 일어났던 우리나라의 신종교 운동을 보면 된다. 이른바 개벽시대로 통칭되는 이 시기에 대해 신종교의 창시자들은 이 땅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 유토피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강증산으로 그는 앞으로 곧 모든 사회적 차별이 없어지고 물질적 불편함이 해소되는 지상선경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신종교에서 이런 지상(地上)의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것은 신종교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많은 경우에 사회적인 조건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신분과 가난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죽어서 복을 받는다는 생각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기성종교로 되어 있는 종교들도 초기에는 지상의 유토피아를 설파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독교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초기 기독교의 신자들은 바울을 포함해서 예수가 곧 재림해서 로마를 무찌른 다음 천년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교회가 제도화 되자 지상의 유토피아 교리는 들어가고 내세를 더 강조하는 현상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지상의 유토피아 건설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불교에서도 발달해가는 과정에서 이와 관계된 불교 종파가 생겨나는데 미륵불교가 바로 그것이다. 미륵이 하생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것이 그 기본 교리로 이 종파는 불교 내부보다 민중종교와 혼합되면서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12) 종교는 선교를 한다. 종교가 선교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게 보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종교처럼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것을 알리려고 하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어떤 때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선교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만 목격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간혹 선교에 무관심한 종교들이 있는데 이런 종교들은 한 두 세대 안에 절멸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열두 개에 달하는 종교의 특징들에 대해서 보았다. 만일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 이 묘사에서 빠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좋은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종교를 정의하려 노력해보아도 인류의 종교 현상은 너무나 풍부하고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설로는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종교의 특징에 대한 묘사는 끝내고 종교의 본령에 대해 보기로 하자. 최준식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국제한국학회장, 한국문화표현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콜라독립을 넘어서》《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