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먼 약속 / 류 근 잊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봄날 네 가슴에 처음 온 꽃잎으로 피었다가 오는 비 가는 세월에 남김없이 스러져 저물어 간다는 건 내가 먼저 이 별에 가자고 했다 눈 덮인 지붕들 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우리 떠나 온 저녁 숲길의 안개처럼 따뜻해서 이 별에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왔고 너 나중에 왔고 내 기억이 기억나기 전에 꽃들이 먼저 피었다 우리 이 별에서 너무 늦게 만났다 아무런 뜻도 없이 해가 뜨고 비가 오는 날들이 지나갔다 잊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저 별에서 이 별까지 죽음도 없이 건너와 마침내 환한 슬픔 하나로 다시 먼 약속이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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