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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에 미친 영향 - 구승회

필부 2006. 7. 4. 09:58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에 미친 영향 - 구승회(동국대 교수, 윤리문화학) 생태(생태계, 생태학)라는 말은 '정보', '문화'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화두다. 최근에는 그냥 '생태학'이라고 쓰지 않고 '생태주의'라는 단어로 변용되고 있다. 하지만 생태주의란 다양한 분광적(spectrum) 현상을 보이는 그리 선명하지 못한 용어다. 이것은 아주 소박한 자연보존론자, 기술지향적인 환경보호론자, 형이상학적인 생명중심주의자(신비주의자), 혹은 반문명주의를 선언하는 급진적인 전체론자(holist)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태주의는 환경사상, 생태사상에 기초한 아주 느슨한 '이념의 집합'이지, 구체적인 지향성을 갖는 개념은 아니다. - 자연, 환경, 생태의 개념을 포괄하는 생태주의 생태주의는 '자연', '환경', '생태(계)', 세 개념을 포괄한다. 자연은 가치중립적인 대상 개념인 반면에, 환경은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인간의, 인간을 위한 조건이다. 환경은 인간과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적인 문화양식이며, 동시에 평가적 개념이기도 하다. 반면에 생태(계)라는 말은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순전히 생물학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 후반부터 에콜로지(ecology)는 에코노미(economy)와 어원상의 사촌관계를 청산하고, 학문의 전 분야로 확산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산업주의의 끝없는 자기확대에 대한 반성의 도구로써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대지의 장엄함에 대한 경외를 주장했던 레오폴드(Aldo Leopold), 1964년 『침묵하는 봄』으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던 카슨(Rachael Carson), 시(詩)를 통해 환경파괴를 고발함으로써 환경적 관심의 대중화에 기여한 스나이더(Gary Snyder) 등은 생태주의의 확산에 기여한 선구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에 자극 받아 나온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 슈마허의 에세이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은 지난 세기 환경운동을 촉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 산업주의의 자기 확대에 대한 반성의 도구 지난 세기 6∼70년대의 환경사상은 환경적 관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공해, 오염, 보존, 보호 등 인간중심적 관심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자연환경'을 지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환경문제가 사회운동을 통하여 충분히 대중화된 후에 학문적인 접근이 시작됐는데, 후속하는 학술적인 연구는 세기말에 이르러 생태학적, 환경적 가치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하는 정언명령의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심지어는 과학탐구, 거래, 기업, 매체 등 모든 분야에서 호황을 누리는 '상품'으로 과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생태주의의 확산은 인문학 연구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함께 끼쳤다. 부정적인 영향은 첫째, 초기 생태사상가들은 현재를 비판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아주 어두운 미래조망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경향은 인문학 연구에 강한 반인간주의적 정신을 퍼뜨렸으며, 둘째, 생태주의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포스트모던적 문화현상과 결부되면서 인문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자기-파괴적인 허무주의를 끌어 들였으며, 셋째,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반성의 결과 서구 사람들이 동양사상에서 대안을 구하면서 인문학 연구가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생태주의는 두 가지 잘못된 이데올로기―즉 '환경이데올로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는데, 하나는 환경친화적이고, 생태 지향적인 것은 모두 좋다는 식의 생태지상주의가 과격해지면서 과거의 정치적 전체주의보다 더 위험한 '생태적 전체주의'(eco-fascism)로 되는 것이고 ―예를 들면 심층생태론(deep ecology), 다른 하나는 자연관, 세계관의 변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처방보다는 환경- 기술적 처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중심적 사고'가 그것이다. - 잘못된 환경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지만 인문학의 휴머니즘 복원에 중요한 기여 그러나 이런 모든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난 3~40년간의 생태학적 사유의 발전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철학과 문학이 생태학적 사유와 특별한 친화성을 갖는다. 현대 세계에서 주체-강화와 지배-강화를 주도해 온 이들 학문분과는 19~20세기를 거치면서 공고히 해 온 이성적 기획의 결과들을 전면 부인하는 자기모순적인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파괴적인 경향이라기보다는 세계관 변화의 계기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생태철학, 생태비평, 환경윤리, 생태문학 등은 모던적 철학, 문학의 해체라기보다는 '자연학적 재구성'으로서 이미 고착화된 분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밖에도 시(詩)의 해석, 도덕 판단의 정당화, 존재에 대한 질문, 기술의 역사적 진화에 대한 해석 및 미래예측 기술 등의 분야에서 지금도 무한 팽창하고 있다. 그러면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적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 이외에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보자. 무엇보다도 경제생활의 변화를 들 수 있겠다. 규모의 경제에서 린(lean) 생산방식으로, 자연친화적인 생산-소비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거대한 수퍼마켓에서 소규모 직거래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세계화·정보화와 연결되면서 급속한 탈중심화가 일어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체제중심적 삶에서 생활세계중심적인 다양한 분권적, 공동체적 삶으로 변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개인들의 행위를 지배하는 도덕의 기준도 변하고 있다. '경쟁', '타협', '합리성'이라는 공적 도덕은 약화되고, '연대', '결속', '관용'이 중요한 생태-도덕적 표준으로 되고 있다. 이는 다문화주의 시대의 필연적인 공존의 논리이다. - 생태학적 사유가 세계관 변화의 계기로 작용해 이처럼 생태학적 사유가 인문학과 현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 왔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변화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사회성의 쇠퇴, 그것이 현대(modernity)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때, 생태학적 사유는 엄숙주의, 정적주의(quieticism)에 사로잡힌 인문학의 '반인간주의적 데카당스(decadance)'를 치유하였으며, 휴머니즘의 복원에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제 정념을 이성만큼이나 고상하게 생각하고, 이념을 진리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만큼이나 낭만적인 혁명을 생각하는 '사회적 개인'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바로 '포스트 휴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