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한 옥 자 1. 떠남을 꿈꾸다. 결혼한 여자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자유라는 것이 꿈을 꾼다고 과연 주어지기는 하는 걸까. 여러 날 자신에게 반문하다 벼르고 별러 어렵사리 떠난 여행길이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예정대로라면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토요일 오전에 떠날 참이었다. 일박 이 일의 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면 한시가 급했고 단 일 분 일 초도 아까운 시간이기에 빨리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 서둘러 아침밥을 지었다. 가정주부의 부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먹을거리며 빨래, 청소도 부리나케 해치웠다. 변함없이 일터로 출근을 했고 몇 가지의 일을 마치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은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으며 느닷없이 발생하는 업무에 발목을 붙잡힐 것만 같아 불안하였다. 늘 이랬다. 문학회의 행사나 친구와의 만남 등 나만을 위한 시간을 모처럼 갖고자 하려면 계획에 수시로 변수가 생기고 마치 뒤에서 무엇인가 나를 잡는 것 같아 내빼듯 도망치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일을 마치고 떠나자 초조하고 긴장되었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며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에 들어선 시간이 오후 두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예정대로라면 벌써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이다. 하지만, 그 말이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사는 모습이 부는 바람이나 하늘에 흘러 다니는 뜬구름과 같이 변화무쌍한 것이라면 예정이란 말 그대로 내 주관에 의해 미리 그려본 희망에 불과한 것을. 차창 밖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망초꽃이 무척이나 고왔다. 작년 이 맘 때 지인들과의 다정한 만남으로 밤을 하얗게 밝히고 먼동이 터오기 시작하자 들길에서 마시던 커피 향과 함께 나를 유혹하던 그 꽃이었다. 들길에, 묵밭에, 야트막한 야산에, 폐가에 아무렇게나 흔하게 피어 있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기에 이름조차도 몰랐었다. 그러나 맑은 새벽 공기에 섞여 다가와 은은히 내 전신을 감싸던 그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무심하게 바라보던 그 꽃이 마냥 좋아졌다. 꽃집의 화려한 쇼윈도우에서 자기를 과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장미, 백합 등과 같이 화려하지 못한 꽃이라 더 애정이 갔다. 지나는 길손이 눈길 한번이라도 건네주면 산들 부는 바람 편에 향내로 답례하는 수줍어하는 모양이 좋았고 서러운 마음을 가슴속에 꼭꼭 여미며 살아온 내 모습과도 같아 정이 가는 꽃이었다. 세상에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이란 없으리라.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의 쓰임새와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보내져 세상을 빛낸다. 비록 잡초라 할지라도 비가 많이 내리면 흙이 떠 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고 건조한 날에는 바람에 의해 흙먼지를 일으키는 피해를 막아 줄테니. 그러니 이 세상에는 그냥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려니. 나 또한 있어야 할 존재 있기에 이렇게 숨쉬고 있으려니. 달리는 차 안이라 먼발치로만 바라보았지만 하얀 눈가루를 뒤집어 쓴 듯한 망초꽃 무더기에 취하다 보니 내 눈에는 세상모습도 하얗게 보이길 시작했다. 2. 먹장구름 하나 하얗게 보이기 시작하던 세상모습에 잠시 먹장구름 하나가 끼어 들었다. 우리나라의 정체된 도로를 지나다 보면 운전자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간식 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달리는 차 밖에서 튀밥이며 오징어 음료수 등을 가지고 호객을 하기에 꼭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행자의 느긋함을 즐겨볼 요량으로 창문 밖으로 목을 내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명의 모든 상인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움켜쥐고 우르르 길옆 경사가 심한 도로 밑으로 허겁지겁 내려갔다.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백미러로 도로순찰대라 쓰인 차의 모습이 보인다. 저것 때문이었구나. 간식거리를 사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서 호구를 해야하는 그네들이 안타까워 내 십 여 년 전 지난 삶이 떠올랐다. 고향을 떠나 살아볼 요량으로 휴일이면 새 거주지 탐색을 위해 지도를 펴들고 방방곡곡을 헤맸었다. 아무도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고 싶어서이다. 그때 자그마한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이 고향 사람들이었고 그들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져있었다. 나로서는 최대한 질 좋은 재료와 뒤탈없는 마무리, 그리고 내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이익을 취하며 그들의 욕구를 만족 시켜주려 애를 썼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 뜻을 헤아려주었다. 하나 간혹 높은 기대치를 바라는 이를 만나면 여러 날 가슴앓이를 하여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로 내가 그들의 눈에 내 본의와는 달리 이익에 눈 먼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준다는 것은 나로서도 너무나 힘겨웠다. 철새처럼 나타나 선후배, 고향 사람을 찾아 자기만의 이익과 목적을 이기적으로 취하려는 것은 꼭 선거 판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기대 이상의 일방적인 댓 가가 있기를 바라고 찾는 안면이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런 일을 거듭하다 보니 정말로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이 힘겨웠다. 안다고 찾아와 서로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외롭게 살더라도 마음만은 다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고향을 떠나며 다시는 뒤도 돌아다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 마음을 기억해 본다. 이젠 먼 기억들이지만 새삼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이라면 여유 있는 마음으로 넘겼을 일 들을 너무도 민감하게 받아 드렸던 게다. 돈을 벌고 싶은 욕심과 자존심의 싸움에서 언제나 자존심이 먼저 무너져 내렸기에 그리 마음이 쉽게 굳어 갔었나 보다. 순찰대 차가 사라지자 언덕을 다시 올라 길 한가운데로 몰려드는 상인들의 모습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호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은 얼마나 애달픈 일인가. 젊다는 사람들이야 그렇더라도 연만하신 어르신조차 꼭 그렇게 힘겨운 일을 하셔야만 하는 처지일까. 만약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씩씩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약했던 나를 발견하니 저들의 당당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부양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어 저런 힘이 나겠지. 구해 온 양식을 맛있게 먹어줄 자식들의 말똥거리는 눈빛 힘이 저리도 큰 것인가. 인생의 여정이란 것이 어디 지금처럼 막히는 길만 있으랴. 사방 도처에서 뿜어내는 차량의 매연 속에서도 삶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하는 그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에게 막히지 않는 길은 아무 의미가 없듯이 늘 순탄하기만 한 삶의 여정은 밋밋하고 건조한 삶일 뿐이다. 곧 시원스레 길이 뚫렸다. 숙연해졌던 마음에 차창을 통해 불어온 바람 한 점이 숨어드니 골똘하던 상념들이 먹구름과 함께 형체조차 모르게 흩어졌다. 3. 여행지에서 삼십 분이란 시간이 세 시간처럼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려 세 시간의 시간이 삼십 분도 채 안 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이번 여행길을 나선 후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바로 이랬다. 어느새 강릉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였다. 집 떠난 지 불과 삼십여 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시계를 보니 세 시간 하고도 삼십여 분의 시간이 지났다. 사십의 언덕에 선 두 여인은 무슨 웃음이 그리도 헤픈지 이 말에도 웃고 저 말에도 까르르 숨이 넘어갈 듯하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나 서로 하릴없는 걱정을 하면서도 웃고 또 웃었다. 아마도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속박된 일상에서의 탈출과 아무런 이해 득실 없고 행동과 시간이 제한되지 않는 자유가 주어진 통쾌한 기쁨 때문이리라.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들뜬 마음,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며 달려드는 시원한 바람, 마음을 욕심껏 나눠도 아깝지 않은 벗과의 모처럼의 끊임없는 대화가 얼마나 즐겁던지 시간을 가늠할 여유도 없었다. 운전자야 길을 달려야 하니 목적지를 안내하는 이정표쯤은 보며 운전을 하련만 자격미달의 조수석의 조수는 제 본분도 잊고 말았으니. 친구는 서둘러 경포호수로 차를 몰았다. 해질 무렵 하늘의 어둠이 호수 면에 살포시 내려 와 만나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 둘이 만날 때의 떨리고 황홀했던 가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핑크빛으로 상기된 볼과 말소리조차 파장을 일으키던 그녀는 마치 신방에 든 새 각시처럼 곱고도 아름다웠다. 혼전에 그곳에서 홀로 살 때 경포호를 자주 찾았단다. 시원한 호수바람을 벗삼아 타향에서의 고독을 삭혔고 누군가와 대화가 그리우면 책과 호수와 말을 나누었다고 했다. 근무 시간을 마치고 난 저녁시간이나 토요일 오후, 휴일에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포근하게 자신을 반겨 주는 그곳이 있어 외롭지 않게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강릉을 떠난 후에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해 나와 동행하기 전에는 매년 몇 차례씩 홀로 그곳을 찾곤 했었단다. 살면서 먼 기억 속의 장소를 평생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녀가 그런 곳을 경포호로 꼽는다면 나는 아마도 삶의 무게에 눌려 생이라는 짐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을 때 찾았던 동해안의 감포가 그곳이라 할 것이다.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가 부러웠고 지천에 깔린 비린내를 맡으며 먹이를 구하는 경건하기까지 한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힘이 솟았다. 자연 속에서 한 끼니의 음식을 구하고 배고픔을 채우자 더한 욕심도 미련도 없이 둥지를 찾아 떠나는 한낱 미물 앞에서 영장이라는 사람은 무슨 욕심을 그리 내며 살다가 덫에 걸린 짐승 마냥 허우적거리고 있었던가. 그렇게 스스로 던진 그물에 갇혀 심한 몸 태질을 하고 보니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이 몸에도 찾아왔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가슴에 병이 들었던지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하였다. 그러더니 끝내는 얼굴 한쪽 근육에 경련이 일었다. 어눌해진 말씨와 감각이 둔해진 볼을 쥐고 빨리 낫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아픈 침을 무수히 맞았다. 그럴 때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자 남편은 휴식이라는 명목으로 그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불과 일주일이란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 있었기에 곧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건강도 회복했다. 그 후로도 마음이 답답하다 싶어 찾아가면 그곳은 내게 마음의 소통을 주니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살면서 마음 줄 벗, 찾아가고픈 장소 하나쯤 있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세상살이에 편승하여 치열히 양식을 구하며 살아야 하지만 잠시나마 마음 나눌 벗과 마음가는 장소를 찾아 나를 찾고자 떠남을 시도하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무엇일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가 길에 마음은 언제나 수 없는 몸부림을 친다. 이대로 영원히 멀리 떠나버렸으면.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잡다한 세상사에서 벗어났으면 이라고. 지는 해는 왜 그리도 야속하던지. 경포호에서 지는 석양빛은 그리도 곱건 만 귀가 길의 그 빛은 암울한 검은 빛만 내뿜는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돌아가 쉴 곳이 있고 기다려주는 가족들이 있어 돌아갈 수밖에 없듯이 자유란 자기의 몸에 맞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편하고 안도할 수 있을 때 가장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자유를 찾아, 나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돌아갈 걱정을 한다. 내일의 석양빛이 검게 마음에 드리울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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