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서점에 들렸습니다. 고속버스를 내리자마자 강남터미널 영풍문고로 달려갔지요. 저고리 안주머니에 문화상품권이 담긴 봉투가 있었거든요. 지난번 그 누구와 한강 나루에서 커피 한 잔 마시던 날, 바로 그날 저녁에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우리 천사가 아버지 생일 선물로 건네준 것을, 사람 분비는 번잡한 장소가 싫어 그냥 보관해 둔 것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책방만 보이면 무작정 들려 몇 권의 책을 고르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처 읽지 못하고 쌓아두는 책이 늘어만 갔죠. 아무튼 읽어야할 책이 많아지면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간 저축해 둔 돈을 꺼내 쓰듯 한 권 한 권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년을 전에 사 둔 책들을 읽다보니 읽어야할 책을 읽어서 후련하기도 하지만 비축해둔 비자금을 축내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 습성이죠. 상경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면서 버스에 내리면 곧바로 책을 고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책 숲에 들어서자 바닥에 앉아 책장에 파묻힌 젊은이들을 보며 예전에 종로서적에서 직원들 눈치를 살피면서 책 한 권을 눈으로 훔쳐 읽던 기억이 떠올라 실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기 때문이지요. 책 속에 이 세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책을 펼쳐낼 나이에도 내가 쓴 책 한 권 없다는 게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되지요. 버릇처럼 제목과 저자를 확인하고 차례와 머리말을 읽기를 반복합니다. 책을 고르는 제 방식이거든요. 사들고 집에 와서 황당한 마음이 들지 않기 위해서는 머리를 굴려 골라야 해요. 나중에 선택한 책들을 보면 그 당시의 관심사를 살펴볼 수도 있어요. 어제 고른 책이 뭐냐고요? 장자 사상에 대한 것이 두 권이고요. 오쇼의 구름 같은 자유를 하나 고르고요. 충동에의 욕망, 그리고 쓸데없는 걱정 현명한 걱정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한 보름은 부자로 넉넉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쓸데없는 걱정도 안 하게 될 것이고요. 아무튼 길이란 인간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 길을 가든지 포기하든지 자유이지만 길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기쁨입니다. 생각이란 행동하기 위해서 사유되는 것이기에 길이 보인다면 그 길을 걸어야 실천적 삶이 되겠죠. 추구해야 얻어지는 행복이기에 더더욱 그 길을 걸으려 합니다. 길이란 통과하라고 만들어진 것이죠. 그렇게 걷다보면 하늘에 당도하게 되리라 믿고 오늘도 부단히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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