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물체를 연구하려면 가장 큰 실험기구가 필요하다? - 김동원(KAIST교수/과학사) 인간의 오감은 물론이고 보통 상상력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작은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작은 입자를 연구하기 위해서 반경 수십 킬로의 거대한 건축물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가장 흔히 20세기 거대과학(Big Science)의 상징물로 등장하는 입자가속기는 바로 아주 작은 입자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장치이다. 189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 교수였던 톰슨이 원자가 음의 전기를 띤 작은 입자들로 구성돼 있음을 밝혔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가장 작은 알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원자가 쪼개진 것이다. 이어 톰슨의 제자였던 러더포드는 알파입자로 다른 원소를 때리는 충돌 산란방법을 사용해 1911년에 원자핵을 발견했고, 1918년 말에는 원소의 인공변환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아주 작은 에너지밖에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자핵을 더 강력하게 때려서 그 파편을 연구하기에는 부적합했다. 1932년 채드윅이 발견한 중성자는 알파입자(헬륨이온)와는 달리 전기적으로 중성이었기 때문에 원자핵을 때려서 그 결과를 관찰하는 데 아주 적절한 도구였다. 한편 1930년대 미국 물리학자 로렌스는 입자를 원운동을 통해서 가속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 축적돼 있던 고전압 기술, 무선공학, 기계공학적 지식들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록펠러 재단을 비롯한 사설재단들의 재정적 지원을 끌어들여 놀랍게도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효율이 매우 높은 입자가속기(싸이클로트론)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로렌스의 가속기는 당시 개발되고 있었던 다른 종류의 가속기들보다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곧 가속기의 대표주자가 됐다. 1945년 이후 세계 강대국들은 모두 거대한 규모의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구 소련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서로 더 큰 규모의 가속기를 건설하는 경쟁을 벌였고, 이에 질세라 유럽과 일본도 이 경쟁 대열에 참여했다. 입자가속기의 건설과 운영은 20세기 후반 원자물리학뿐 아니라 물리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작은 실험실에서 많아야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한두 명의 교수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연구하던 방식이, 이제는 가속기 한 대에 수백 명 단위의 박사급들이 모여서 조직을 이루고 그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됐다. 또 가속기 건설과 운영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국가 차원, 심지어 국가들의 연합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게 됐다(CERN이 그 좋은 예이다). 즉 정치가 과학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이다. 물질의 근본을 캐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은 마침내 원자를 쪼갰고, 입자 가속기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낳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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