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서의 최근 연구동향 / 배정훈 교수 IV. 묵시문학과 다니엘서 1. 묵시문학 연구동향

필부 2006. 5. 14. 09:38
 

성문서의 최근 연구동향 / 배정훈 교수 IV. 묵시문학과 다니엘서 1. 묵시문학 연구동향 최근에 묵시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은, 신약성서에서 묵시현상에 관한 논의가 예수의 가르침, 초기 팔레스틴 교회에 관한 관점, 바울의 가르침, 그리고 원시 헬레니스틱 기독교의 신학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약 중간기 (주전 200 년-주후 100 년)에 있는 유대 묵시문학에 관한 연구는 최근에 이러한 이슈들에 관한 논의를 위한 배경으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묵시현상의 연구를 위하여 아포캘립스라는 용어는 계시록과 유사한 문헌을 지칭하는 문학적인 용어라는 견해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묵시문학의 장르에 관하여는 콜린스 (J. J. Collins)가 포괄적으로 연구하였다. 형태와 내용의 공통 특징에 기초한 그의 묵시록의 문학적 연구를 아포캘립스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보여주는 한에서 시간적이며, 또 다른 초자연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공간적인 초월적인 실재를 드러내면서, 계시가 저 세상의 존재에 의하여 수납자 인간에게 중재되는 설화 구조를 가진 계시 문헌의 장르." 라고 정의한다. 콜린스의 정의는 모든 묵시록들간에 어떤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제안하고 있지만, 사실상, 역사적인 묵시록과 저 세상적인 묵시록들간의 분류만으로는 문헌들간의 이념적인 갈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핸슨은 세가지 용어를 사용하여 묵시현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문헌적인 장르로서의 아포캘립스 (apocalypse), 일련의 사상과 동기로서의 묵시적 종말론 (apocalyptic eschatology), 그리고 사회적인 이념로서의 아포캘립티시즘 (apocalypticism). 묵시록연구를 위한 용어 정의에 있어서 묵시적 종말론을 포함하려는 그의 시도는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받고 있다. 현재 묵시록 연구를 위한 용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 1) 아포캘립스 (apocalypse)는 단지 문헌적인 장르이다; 2) 아포캘립틱은 형용사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나, 묵시현상을 의미하는 명사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3) 아포캘립틱대신 아포캘립티시즘 (apocalypticism)을 사용하여 묵시주의라고 번역하면서, 그것을 "초자연적인 계시, 천상의 세계, 종말론적인 심판 등을 포함한 특별한 생각의 태도를 보여주는 가치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묵시주의에 대한 최초의 연구들은 벨하우젠 (J. Wellhausen)의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포로이전과 포로이후 시대를 분별하면서, 묵시주의자들을 기껏해야, 예언서와 페르샤 문헌들로부터 빌려온 모방주의자인 에피고넨 (Epigonen)이라고 불리었다. 찰스 (R. H. Charles)는 벨하우젠을 뒤따르면서, 묵시주의가 유대교의 핵심요소이고, 율법에의 신실함이라는 면에서 유대교의 정신을 이어받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유대교의 묵시적인 측면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궁켈 (H. Gunkel)은 문헌비평 방법대신 양식비평을 사용함으로 방법론적인 혁명을 이루었는데, 묵시주의의 기원의 문제에서 그는 묵시주의에 나타나는 신화를 바벨론의 갈등 신화와 동일시했다. 나아가서 모빙켈은 페르샤의 이원론이 묵시주의의 기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에 로울리가 강조한 두가지는, 첫째로, 그는 묵시주의가 예언의 아들임을 강조하고 예언서 안에서 원-묵시문서를 추적하려는 노력을 불러 일으켰다. 둘째로, 그는 다니엘서의 연대를 안티오쿠스 IV세 치하의 박해 시기인 기원전 2 세기로 보면서 다니엘서를 최초의 묵시록이라고 강조한다. 이 주장은 쿰란에서 발견된 에녹서의 아람어판의 발견으로 유효성을 잃게 되었다. 이후에, 학자들의 관심은 묵시주의의 기원을 이방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제2성전 시대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배경으로 보려는 경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프로스트 (S. B. Frost)는 이스라엘의 묵시주의가 사회적인 정황 안에 있다고 주장하되, 묵시주의를 종말론과 신화의 조합으로 그리고 있다. 제2성전 시대에 대한 연구를 위해 사회학적인 모델을 사용한 사람은 플뢰거 (Otto Ploeger) 와 핸슨 (P. Hanson) 등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포로후기 사독 제사직을 율법전승의 옹호자라고 이해하면서, 묵시주의의 기원을 종말론에 두고 있다. 플뢰거의 관심은 예언과 묵시의 역사적인 관계와, 첫 묵시록인 다니엘서를 만든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플뢰거는 제2성전 시대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맞선 두가지 다른 그룹들인, 하시딤(다니엘서)와 마카비 운동(제1마카비서)의 갈등으로 묵시주의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신정체제를 옹호하는 자들은 현재 필요한 인간의 행동을 선택했고 (제1마카비서), 종말론자들은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제2성전의 역사를 두 세력의 갈등의 연구를 위하여, 핸슨은 제2성전 시대에 생긴 성직제도 (hierocratic institution)와 이상주의자(visionaries) 사이의 갈등을 제시한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박탈이론(deprivation theory)과 지배자로서의 사독 제사장에 관한 것이다. 핸슨은 사회학에서 유래한 박탈이론을 이용하여 포로후기시대의 발전을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사이의 갈등의 역사로 이해한다. 이 박탈이론에 의하면, 하층계급은 육체적이건 상징적이건 지배계급에 대항하기 위하여 묵시장르를 만들거나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박탈이론에 반대하여 쿡(Cook)은 그룹들이 실제 박탈되거나 좌절되지 않아도 부조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원 묵시적 본문들이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무시된 그룹의 작품이 아니라, 유대의 회복시기에 제사장계열에 서있는 그룹들 가운데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겔 38-39, 슥 1-8, 요엘서). 더우기 데이비스 (P. R. Davies)는 핸슨의 주장을 비판하는 가운데 다니엘서가 더 이상 피지배 계층의 산물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지배계층이 이념적인 제어를 통하여 그들의 신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묵시주의의 기원이 이스라엘 외적인 바벨론이나, 페르샤 등으로부터 왔다는 주장에서부터 묵시주의의 기원을 이스라엘 내적인 것이라는 주장으로 전환되어, 그 중에서 다니엘서를 최초의 묵시록으로 보며, 묵시주의의 기원을 예언과 관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폰라드로부터 시작되는 연구는 묵시주의의 기원으로서 지혜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었다. 폰라드는 지혜를 묵시주의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논의를 시작하게 하였다. 폰라드는 묵시주의와 예언의 연속성을 포기하면서, 묵시주의와 지혜의 연속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1) 묵시문헌에서의 영웅들은 다니엘, 에녹 그리고 에스라같은 지혜자나 서기관이다; 2) 이 전승들은 역사와는 관계없고, 보편적인 역사에 관한 지식과 자연에 관한 지식 등을 포함한 지식과 관련있는 것이다; 3) 두 전승들은 역사에 관한 염세적인 견해와 시간의 결정론을 포함하고 있다; 4) 두 전승들은 신정론과 관련있다. 그러나 폰라드의 묵시록 연구 방법론은 예언을 역사와 관련시키되, 묵시주의가 예언과는 불연속적으로 구분되고, 예언자의 메세지로부터 분리된 역사에 관한 염세주의를 담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폰 라드 이후에, 학자들은 점차적으로 두가지 다른 지혜의 존재를 규명해 왔다. 뮐러(H. P. Mueller)는 전통적으로 교육적인 지혜와 맨틱(mantic) 지혜를 구분하고 있다. 그는 종말론과 결정론가운데 계속되는 맨틱 지혜가 구약성서에 있는 묵시자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스미스 (J. Z. Smith)는 묵시주의가 토속 왕정의 종말로 말미암은 혼돈을 통해 궁중의 법정과 후견자를 상실한 지혜라고 결론 내린다. 콜린스도 또한 잠언적인 지혜와 맨틱 지혜의 불일치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국제적인 지혜로서 다니엘서의 이야기 (다니엘서 1-6 장)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아래 다니엘서 7-12 장의 묵시적 이상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지혜의 다른 점에 대하여는 존슨(E. E. Johnson)과 퀘클러 (Koechler)의 묵시적인 지혜 연구에도 나타난다. 뮐러이래로, 밴더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맨틱 지혜가 유대의 에녹문헌들이 발생하고 자라온 정황의 상당한 부분을 제공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에서 우리는 묵시주의의 기원을 예언이나 지혜중 어느 하나와 동일시하는 것의 위험성을 깨달을 수 있다. 윌슨은 묵시주의의 일반적인 기원에 관하여 지혜나 예언의 어느 한쪽을 기원으로 여기는 연구를 포기하여야 하며, 묵시문헌을 그 자체의 언어로 연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콜린스는 묵시주의는 어떤 다른 것들의 용어로 이해되어야 하는 파생적인 것은 아니며. 묵시주의 그 자체의 내적인 구조와 묵시주의의 조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만이 아니라, 묵시주의의 연구를 위하여 에녹1서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니엘서 중심의 연구는 다니엘서가 묵시록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초의 묵시록으로 보며, 이 묵시록의 중요한 특징으로 임박한 종말과 박해라는 역사적인 상황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서 중심의 연구는 사해사본에서 나타난 에녹서의 아람어 사본의 발견으로 도전을 받았다. 이 에녹서의 아람어 사본은 다니엘서보다 더 오래된 문헌인 파숫꾼의 책 (제1 에녹서 1-36 장)과 별들의 책 (제1 에녹서 72-82 장)을 포함하고 있다. 에녹서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은 같은 묵시록인 파숫꾼의 책이 다니엘서와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숫꾼의 책은 임박한 종말보다는 사제문헌 (Priestly writings)과 지혜문헌에서 나타난 우주론 (Cosmology)에 관심이 있다. 다니엘서과 파숫꾼의 책은 거의 같은 시기에 씌여졌다. 쿰란에서 발견된 아람어판 에녹서 편집판을 통해 J. T. 밀릭은 에녹서의 저작시기를 기원전 3세기로 보고 있다. 다니엘서의 주요 부분은 기원전 164년경인 안티오커스의 박해시기에 현재 상태로 편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찰을 종합해 보면 파숫꾼의 책의 최종 편집과 다니엘서의 최종 편집간에는 40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쿰란에서 에녹서의 발견이 곧 에녹서 중심의 연구가 다니엘서 중심의 연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묵시록 연구를 위하여 어느 한 문헌도 무시해서는 안되고 두 문헌의 연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