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文

[스크랩] 뚝새풀 / 임병식

필부 2006. 5. 12. 21:44

뚝새풀 / 임병식 글 쓰기의 독본이 되고 있는 '문장강화'를 펴낸 이태준 선생은 수필 '벽'이라는 글에서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푸른 들판을 보면 탐이 난다. 이리 말하면 성급한 사람은 넘겨짚어 '골프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를 매어 놓거나 꼴을 베는 장소로서의 매력을 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탐나는 것이란 푸른 들판이 아니고 풀인 셈이다. 한데, 오늘 나는 산책을 하다가 그런 전경을 만나고서 우두커니 걸음을 멈추었다. 벼농사를 지은 후의 휴경지상태로 내쳐놓은 논에 잡초가 무성했는데, 그것을 자세히 보았더니 낯이 익은 풀이었던 것이다. 흔히 독새풀이라고 잘못 일컽는 뚝새풀. 이것들이 어느새 논바닥을 온통 점령하여 풀밭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보료를 깔아놓은 듯 했다. 뚝새풀은 생명력이 질긴 풀로 유명하다. 마른 땅이나 습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지만 적당히 습기만 있으면 어디서나 잘 자란다. 특히 논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자라난다. 줄기는 여리고 키도 한 뻠 정도밖에 크지 않으나 번식력은 왕성하다. 하지만, 이 뚝새풀은 사료로서는 그다지 좋은 축에 들지 못된다. 소나 돼지에게 먹일 경우 독이 있어 가끔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꼴을 베는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놈이었다. 꼴을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한곳에서도 금방 한 망태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 소나 돼지를 먹이기 위해 이것을 베어온 때가 많았다. 나는 초등학교시절 망태를 메고 살다시피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농부수업이기도 했다. 해서 일단 학교를 파하고 오면 망태를 메고 나가 꼴부터 한 망태 해 날라야 했다. 그것이 정해진 하루 작업량이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훈련이 아니라 실제로 소나 돼지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과였다. 나는 그렇게 옥죄인 삶이 여간 싫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서커서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때 안 것이지만, 돼지는 고마니풀과 닭의장풀을 특히 좋아했다. 이것만 넣어주면 금방 먹어치웠다. 그리고 소는 무엇보다도 자귀나무 이파리를 좋아했다. 다른 콩과식물이나 자운영, 띠풀의 애순 등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자귀나무 잎을 유별나게 탐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소가 좋아한 풀만을 베어올 수는 없었다. 오직 관심은 어서 한 망태 분량을 채우는데 있었음으로 베어 오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목표를 짐승의 기호에 맞추기보다는 그 날의 목표량을 채우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10여 마리를 넘게 낳았는데, 어미돼지가 새끼들을 불러 모와 젖을 먹이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냇가로 나가 바지가랑이를 다 적셔가며 고마니풀을 베어와 우리 안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소에게는 늘 소홀했다. 배를 채워주지 못한 것이다. 꼴을 베어온다고는 하나, 낫질이 서툴러 그득히 망태를 채워 가져온 적이 없었기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무딘 운동신경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낫에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왼손잡이인데 집에는 오른손잡이 낫만 있어서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주 손가락을 베었다. 그 영광의 상처가 지금도 이곳 저곳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한데, 꼭 꼴 때문은 아니겠지만 하루는 집에서 기르는 소가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를 훔쳐먹고는 죽은 일이 발생했다. 먹은 보리가 뱃속에서 부풀어올라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은 소화를 시키지 못한 소는 고창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일이 꼭 나의 잘못만 같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지금 이런 벌판처럼 뚝새풀이라도 많았더라면 허기져서 일어난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돌이켜보면 배불리 못먹여 준 게 후회가 된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뚝새풀을 한 옴큼 뜯어보았다. 그러자 손에서는 뚝새풀 특유의 풋내가 진하게 베어났다. 얼마 만에 맡아본 냄새인가. 옛날 가난한 집에서는 이 씨앗을 훑어서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사람은커녕 어느 짐승하나 넘겨다보지 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필요할 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다가 필요 없으면 잘 보이는 것일까. 나는 지금은 찾는 이가 없어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거듭 탐을 내어보고 있었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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