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은 슬프다 / 권경인

필부 2017. 11. 9. 18:52

변명은 슬프다 / 권경인 오래 병들어 푹푹 썩어버린 지상의 작은 방 한 칸을 버리고 눈비 오는 동안 조용히 길을 물어 한천에 닿다 너무 또렷하여 빛 한 점 내비치지 않는 마음의 원시림 누추하고도 귀한 것들이 제 속의 숨은 보석을 끌고 산을 올라간다 다스릴 것 하도 많아서 길은 끝이 없는데 제 그림자 하나로 넉넉히 차운 밤 밝히고도 어둠은 스스로 어찌하려는 것인지 제 안에 수많은 새들을 기른다 단 한 번의 비상을 꿈꾸어 전생애를 탕진하고도 가장 힘든 길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니 한꺼번에 마음의 가지를 터는 일이란 얼마나 혹독한 것인가 말이란 할수록 많아지는 법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못할 때 그는 말한다 오를수록 먼 길이 있으니 지금 깨어 있는 자 영원히 깨어 있으리라 이 골짜기 저 능선 바람의 길에도 도가 있으니 무릇 생명이 있는 것들의 고통 속에도 길이 있으리라 공중에서 끊임없이 몸을 바꾸는 잠언 몇 줄기 깨어진 영혼의 아픈 틈을 메우듯 군더더기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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