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사랑 / 고정희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 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되씹게 될까.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설레게 하고, 사랑이라는 말로 얼마나 절망하게 되는가. 사랑이라는 말을 알기 전에 사랑을 느끼게 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가 끝내 완전한 정의를 포기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지 못 할 것 같고 그것과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무관하다고 치부할 체념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슴 한 귀퉁이에서 소리 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내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물 없이 살 수 없는 물고기와 같이 모순 덩어리로 이어지는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도대체 인간들은 또 다른 인간들에게서 자아실현을 구현하려는 아둔한 욕망에 휩싸여 산다. 그래서 허망한 손짓이 되고, 두고두고 상처로 남아 죽는 날까지 아물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사랑이 무엇이든가. 좋아하는 것이고, 좋아하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더 좋아는 것을 일컬어 사랑이라 하지 않더냐.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그 보다 몇 곱절 나를 좋아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 그것도 부족하여 너는 내가 되어야 하고 나는 네가 되는 합일이라는 일치를 욕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네가 아닌 나의 마음을 거울로 하여 비추이는 영상들을 보고 안심하고 슬퍼하는 일이 사랑이 아닌가. 더더욱 마땅찮은 것은 대상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개체와 개체가 서로를 이해하기가 난해하거늘 하물며 동성도 아닌 이성과 일치를 이루라는 말은 가당한가. 부족한 상태가 완성일 것이다. 불완전한 관계의 인정을 사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빚고 그 인간을 둘로 나누어 남과 여라 가르지 않았을까. 여류시인의 시에서 가슴과 등처럼 다른 느낌을 읽게 된다. 한 번의 나눔으로 매 겨울을 덮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꺾어서 화병에 꽂아두라는 절규를 들으며 가지에서 꺾은 꽃은 선물하는 법이 아니라 했던 말을 생각한다. 그 말에 고개 끄덕이던 얼굴을 기억한다. 과연 꺾을만한 꽃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