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특질 / 최준식 2)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나눈다. 인간의 다양한 삶의 분야 가운데 성스러움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종교밖에 없을 것이다. 루돌프 오토 같은 학자들은 종교를 '성스러움의 체험'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성스러움을 강조한다. 또 앞에서 본 것처럼 엘리아데도 종교적 현상을 '성스러움이 속된 공간이나 시간 속으로 침투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성스러움이 현현하는 데에는 몇 가지 차원이 있다. 그 차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과 '지역'과 '시간'이다. 종교에서 어떤 대상이 성스럽다는 것은 너무나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불상 같은 성상(聖像)이나 성당 같은 건물이 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닌 삶의 다른 국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역이 성스럽다고 상정하는 경우도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 것도 없이 절이란 불타가 거주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그 공간은 속계와 구별된다. 절의 입장에서 볼 때 일주문 바깥은 속된 공간이다. 그러면 일주문만 통과하면 바로 성스러운 지역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전체 절의 공간 가운데 신성한 공간은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해서 들어온 다음의 공간- 즉 대웅전(과 앞마당)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럼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의 지역은 무엇일까? 바로 속된 공간에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과도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기독교의 경우에 교회 안을 거룩한 성소(聖所, sanctuary)라고 해서 그 안에 범죄자가 들어가면 잡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삼한에 있던 소도(蘇塗)가 이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소도는 조금 높은 지역에 있는 성소인데 이곳에 나무를 세워놓고 방울과 북을 달아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천군(天君)이라는 사람을 두어 그곳을 주재하게 했다고 한다. 대체로 이 천군은 무당으로 추정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곳에 범법자가 들어와도 잡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거룩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성과 속이 교차하는 것을 종교적 현상이라 할 때 동제 지낼 때의 서낭당처럼 극적인 예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동네 어귀에 있는 서낭당은 보통 때는 그다지 성스러운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마을 굿을 할 때가 되면 그곳에 금줄이 쳐지고 황토가 깔리면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바뀐다. 그 성스러움은 마을 굿을 하는 동안에만 통용된다. 굿 기간이 끝나면 그 공간은 다시 속된 공간으로 돌아간다. 한 공간에서 성스러움과 속됨이 교차하는 것이다. 공간뿐만이 아니다. 마을 굿을 하는 동안 이 동네의 시간은 성스러운 시간으로 바뀐다. 이러한 성스러운 시간의 선포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에서는 고난 주일부터 부활절에 이르는 기간이 성스러울 것임에 틀림없다. 불교에서도 굳이 찾는다면 석가모니가 깨닫기 전 마지막 7일간 고행했던 기간을 들 수 있겠다. 이 기간이 성스럽기 때문에 승려들은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종교에는 반드시 성과 속이 구별되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원시' 종교들을 보면 거기서는 성과 속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애니미즘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믿음에 의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아니마 혹은 정령(혹은 생기)이 있어 모든 것이 영적인 힘을 갖는다. 다른 말로 하면 성스럽다는 것이다. 굳이 성스러운 존재와 속된 존재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종교에서는 성과 속의 구별과 비슷한 구별이 또 존재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실재의 세계(reality)와 드러난 세계(appearance)를 구분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힌두교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의 주장에 의하면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브라만뿐이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이 세상은 마야 즉 환(幻)에 불과하다. 이 마야에서 벗어나 원래의 상태인 브라만과의 합일적 상태로 돌아가는 게 힌두교의 목적이다. 이 세간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나 생각 중에 이 세상을 환상(illusion)이라고 주장하는 삶의 부분은 없다. 정치고 경제고 다 이 삶을 최고의 실재(혹은 실제)로 놓는 데에 아무 이견이 없다. 세상을 환상이라고 보는 견해는 유독 힌두교 같은 종교에서만 통용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같은 종교이면서도 힌두교의 이런 견해를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종교도 있다. 기독교가 그 대표주자가 되겠다. 기독교(혹은 유대교)에서는 이 세상이 환일 수 없다. 왜냐면 이 세상은 야훼가 창조한 것이고 창조한 세상을 보고 그 자신도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이 창조하고 좋다고 생각한 것이 환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한 견해에도 각 종교들이 각기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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