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김명인 창고에서 의자를 꺼내 처마 밑 계단에 얹어놓고 진종일 서성거려온 내 몸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와서 앉으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때로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어둠을 주인으로 섬기기도 했다 마른장마에 잔 비 뿌리다 마는 오늘 어느새 다 자란 저 벼들을 보면 들판의 주인은 바람인가, 온 다리가 휘청거리면서도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는 것은 그 무게로 벼를 익히는 것이라 깨닫는다 흔들리는 생각이 저절로 무거워져 의자를 이마 높이로 받들고 싶어질 때 저쪽 구산 자락은 훨씬 이전부터 정지의 자세로 지그시 뒷발을 내리고 파도를 등에 업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 어떤 안식이 있느냐고 네가 네번째 나에게 묻는다 모든것을 부인한 한낮인데 부지런한 낮닭이 어디선가 길게 또 운다 아무도 없는데 무엇인가 내 어께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힘겹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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