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 깊은 가슴에서 잠들고 싶다.

필부 2006. 7. 20. 19:24

초록 숲은 산이 차려입은 화려한 외출복이다. 갈 곳이 없는 산은 외출복을 입은 채 앉아있다. 항상 제자리에서 세월을 보낸다. 오월의 맑은 햇살 아래, 잔 바람에도 출렁이는 숲에는 누군가 옮겨놓은 초록바다가 있다. 그 초록 옷자락을 헤치며 초록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산의 가슴으로, 가슴으로 수줍게 파고들면 산은 간지럼을 타며 초록 나라로 길안내를 한다. 초록은 눈으로 맡는 향기다. 그 향기에 취해 동화나라의 소년이 된다. 눈 안에 고이는 그리움은 새가 되어 나래를 펴고 밀려드는 꿈 때문에 꿈길을 걷는 소년의 해맑은 얼굴을 본다. 어느새 소년의 눈에는 초록바다가 채워지고 눈부처가 된 얼굴 하나 수면에 떠올라 세월이라는 바람에 일렁이며 웃는다. 가슴을 휘감는 웃음소리에 놀라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초록 향기와 초록 꿈이다. 산은 초록으로 치장을 한 채 하늘 닿도록 키를 키우고 나는 향기에 취해 꿈을 꾼다. 그리움은 눈커풀을 무겁게 한다. 이제 잠들고 싶다. 죽음보다 고요하게 잠들고 싶다. 초록 잠을 자고 싶다. 산, 그 깊은 가슴에서 잠들고 싶다. 200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