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숲은
산이 차려입은 화려한 외출복이다.
갈 곳이 없는 산은
외출복을 입은 채 앉아있다.
항상 제자리에서 세월을 보낸다.
오월의 맑은 햇살 아래,
잔 바람에도 출렁이는 숲에는
누군가 옮겨놓은 초록바다가 있다.
그 초록 옷자락을 헤치며
초록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산의 가슴으로,
가슴으로 수줍게 파고들면
산은 간지럼을 타며
초록 나라로 길안내를 한다.
초록은 눈으로 맡는 향기다.
그 향기에 취해
동화나라의 소년이 된다.
눈 안에 고이는 그리움은
새가 되어 나래를 펴고
밀려드는 꿈 때문에 꿈길을 걷는
소년의 해맑은 얼굴을 본다.
어느새
소년의 눈에는 초록바다가 채워지고
눈부처가 된 얼굴 하나
수면에 떠올라
세월이라는 바람에 일렁이며 웃는다.
가슴을 휘감는 웃음소리에 놀라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초록 향기와 초록 꿈이다.
산은 초록으로 치장을 한 채
하늘 닿도록 키를 키우고
나는 향기에 취해 꿈을 꾼다.
그리움은 눈커풀을 무겁게 한다.
이제 잠들고 싶다.
죽음보다 고요하게 잠들고 싶다.
초록 잠을 자고 싶다.
산, 그 깊은 가슴에서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