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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태주의와 기술주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 홍욱희

필부 2006. 7. 5. 17:17
 

생태주의와 기술주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 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서의 생태주의 담론 우리 사회에서 생태주의 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인데 시민환경단체 활동이 본격화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주로 '재야학자'들을 중심으로 심층생태학, 에코페미니즘, 사회생태론 등 다양한 생태주의 이론과 철학들이 소개되었으며 최근 『녹색평론』이 창간 10주년을 맞을 정도로 생태주의 담론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확고한 기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생태주의가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크게 각광받게 된 동기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3, 40년 동안 과거 선진국들이 한 세기 또는 그 이상에 걸쳐서 이룩했던 산업발전의 성과를 한꺼번에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런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인권과 사회복지, 부의 분배 등에 대한 고려 역시 크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부터 사회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봇물처럼 터지고 그 일환으로 쾌적한 환경에 대한 욕구 또한 크게 증대했다. 생태주의는 비단 환경보전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민주화와 복지증진의 차원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이념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분석할 때, 지난 반세기 동안 서구에서 풍미했던 생태주의가 과학기술만능주의, 경제우선주의, 물질주의 등에 대응되는 이념으로서 성장했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생태주의는 사회민주화의 지연과 환경오염의 심화라는 현실 속에서 그것의 개선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운동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 생태주의가 사회운동이념으로 자리잡아 따라서 적어도 우리 현실에서는, 서구에서와는 달리, 생태주의가 그 대응되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주의에 대한 반대론으로 등장했다고 단정짓기 곤란하다. 그리고 사정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태주의와 기술주의, 또는 그것들을 표방하는 인문사회학자들과 과학기술자들의 양대 진영이 서로 대립하는 일이 있을 필요도 없고 또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 2년 동안 동강댐 건설과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논쟁에서 생태주의자들(시민단체)과 기술주의자들(과학자) 사이에 첨예한 대립양상이 전개되었다던지, 최근의 생명윤리 논쟁에서 다시 한번 양대 진영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일 등은 대단히 유감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생태주의가 사회운동의 이념으로 등장한 이래 서구 과학계는 생태주의에 대해 줄곧 냉소적인 입장을 보여 왔는데 이는 생태주의가 처음부터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만약 최근의 사회적 논쟁들에서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다소 경직된 태도를 고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우리 현실에서는 사회 비판에 대한 인식 자체는 과학자라고 해서 생태주의자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환경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또한 과학의 테두리 내에서 충분히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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