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의 꽃밭 이야기
나의 꽃밭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작년 여름 절간의 뜰에서 웃자란 철쭉 가지치기를 하며 꽃나무 그늘에 쌓이는 푸른 가지들이 내 살점처럼 느껴졌지요. 그냥 말라 죽게 하기엔 차마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내 팔을 버리는 것처럼 마음이 아려 모래상자를 만들어 꽂아 두었지요. 내가 이 세상을 등 뒤로 흘러 보내기 위해 산속으로 기어들어 다른 하늘을 보듯이 푸른 가지들이 떨어져 나온 육신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성장하기를 바랐지요. 가지로, 새순으로 존재하기보다 다른 생명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가지들을 키우며 꽃을 피우라는 간구였습니다. 내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사랑은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었지요. 그것들은 꺾꽂이를 한 삽목이 아니라 내 황량한 정신세계에서 건져내는 삶의 욕구라는 씨앗이고 줄기였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허전해지면 집착해야 할 것은 버려두고 정작 버려야 할 것들 생각하느라 자신의 환부를 헤집으며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근심과 허망한 허무는 어둠과 같아 그 그늘에 휩싸이게 되면 더 캄캄하게 장막을 겹으로 둘러치고 견고한 벽을 쌓아 스스로 암울한 감옥으로 숨어듭니다. 우리가 지옥이라 부르는 절망의 고통을 살아 숨쉬며 경험하게 되는 셈이죠. 지옥과 천국이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마련한 신의 안배입니다. 우리 모두 기뻐하거나 평화롭다면 천국에서 사는 삶이고 근심하고 절망한다면 이 세상에서 지옥을 맞아들인 겁니다. 지옥이란 악의 세계이고, 그래서 고통으로 영혼과 육신을 죽게 만드는 것이죠. 누구나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선과 악을 번갈아 쥐고 삽니다. 아무튼 빈손으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기에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손과 발이 움직여 행동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정한대로 그림을 그리죠. 눈을 돌리면 다른 모습이 보이듯 생각 또한 마음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길이 있다면 다른 생각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밝혀낸다는 것입니다. 길이란 만들진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그 길을 내가 걷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살아가며 수도 없이 겪게 되는 선택이라는 결정도 마음의 행로와 다를 게 없죠. 마음에도 씨앗을 뿌리고 영양분이 될 밝은 빛을 자주 쪼여야 아름다운 꽃밭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에게 힘이 되고 의지할 믿음과 사랑해야할 가치가 신앙이지요. 나에게는 철쭉의 작은 가지가 빛이었습니다. 아니, 빛으로 나가는 통로를 열게 하는 가능의 손짓이었지요. 신경 쓰며 돌보아야할 생명은 살아갈 의미의 확인들이었습니다. 오늘 내 꽃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생명체로 거듭난 철쭉들을 건드려 봅니다. 오백 개가 넘는 어린 철쭉들을 보며 작년 여름이 꿈결처럼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나는 그 중 하나, 탐스럽게 초록 잎사귀를 돋아내는 철쭉입니다. 그리운 사람이여. 그립다는 말을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주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나지요. 벌써 훌쩍 이년 반이 지나갔군요. 이제와 진정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흐르는 곡은 Orange Road -Daveed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