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5

필부 2006. 5. 26. 14:30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2)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아담과 이브 신화에 나타난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2: 고통의 시작 계속해서 이 이야기의 기자(記者)는 아담과 이브가 그들이 행한 죄값을 치르느라 에덴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적고 있다. 가령 여자는 애를 낳는 고통을 겪게 되고 남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되는 게 그 구체적인 벌로 나와 있다. 그런데 만일 이 죄값 혹은 벌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할 수 있다. 왜냐면 애를 낳는 게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며 노동도 수고스러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누이 말한 대로 신화란 절대로 씌어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이들이 인간이 되면서, 다시 말해 자의식이 생기면서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의식이 생기면 왜 우리는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소외나 고독이다. 인간은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타자에 눈뜸으로써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이 (외롭게) 혼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계는 밖에 저렇게 있고 나는 여기 이렇게 존재하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 이전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외고 고독이고 없다. 그러나 이제는 철저하게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외로움을 갖고 산다. 자의식이 생기면서 인간은 소외감과 더불어 모두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모든 고통의 원천이 된다. '나'라는 개념이 생기면 곧 바로 내 것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이게 만흉(萬凶)의 근본이 되는 욕심의 출발이다. 욕심, 탐욕, 갈애 혹은 갈망, 집착, 탐착 등등의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고통의 근원은 바로 '나'라는 자의식에 있는 것이다. 왜 욕심이 만흉의 근본일까? 그것은 이 인간의 욕심이란 것이 결코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 앞에서도 보았지만 불교 경전에서는 전 우주가 보석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다 자기의 소유라 하더라도 인간의 욕심은 충족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식이다. 또 인간이 욕심을 부리는 것은 목마른 사람이 짠물 들이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짠물은 들이킬수록 더 많은 물이 필요하게 된다. 욕심도 마찬가지이다. 욕심은 또 다른-더 많은, 더 깊은-욕심을 낳게 해서 계속해서 커지면 커지지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욕심은 채울 수가 없으니 괴롭기가 그지없다. 불교가 말하는 인간의 여덟 가지 고통, 즉 팔고(八苦)에도 욕심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그게 고통이다'라고 하는 게 그것이다. 이렇게 욕심은 한없는 고통 제조기라 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인 사성제에도 어김없이 욕망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인생 자체가 고통인데 그 고통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집착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 집착만 버리면 고통도 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착과 욕망 의 근저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자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의식이 남아 있는 한 인간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불교-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의 마지막 목표는 이 자아의식을 제거하는 데에 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놀드 토인비는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극복'이라고 단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