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3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2)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을 거역하는 동물인 인간 이렇게 인간의 생각이 생각하는 주체와 생각되는 객체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지는 것은 인간의 인식 구조가 이미 주체적 자기와 객체적 자기라는 이원론적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 어떤 학자들은 뇌의 일정한 부분에서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관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이 갖는 특성은 모두 이 이원적인(dualistic) 자아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위에서는 시범적인 예로 언어적인 능력에 대해서만 보았는데 더 구체적인 예를 통해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보자. 동물과 비교해볼 때 시간 개념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전의 자기(혹은 이전의 외계)와 지금의 자기(혹은 지금의 외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어디서 생기는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에서 생기는 것이다. 대상으로 기억된 이전의 상태와 지금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모두 이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주체 개념이 없는 동물들은 외계에서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자연과 하나가 돼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동물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보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더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앞의 설명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동물은 자연을 절대 거역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유전인자 속에 저장된 정보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다. 배고플 때만 먹이를 먹을 수 있고 발정이 될 때에만 교미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과 사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 번 포식을 한 사자는 며칠 동안은 아무리 먹이인 얼룩말들이 자기 앞에서 얼쩡거려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자는 다만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아니 그냥 자연의 일부로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자의식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2) 여기에 대한 가장 상세한 설명은 켄 윌버(Ken Wilber)의 《에덴으로부터의 도약--인간 진화에 대한 초개인적인 주장(Up From Eden--A Transpersonal View of Human Evolution)》에 잘 나와 있다. 윌버는 인간이 이런 자의식을 획득하고 더 나아가서 이 자의식마저 초월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진화 과정이라는 대단히 폭넓은 견해를 밝혔다. 더 나아가서 인간 역사 자체도 이런 진화 과정을 밟고 나아가고 있다는 엄청나게 큰 견해를 주장했다. 윌버는 이 과정을 상세하게 논했지만 나는 세밀한 것은 생략하고 큰 줄기로만 보려고 한다. 너무 세밀한 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을 원하는 독자는 이 책을 참고하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나 번역된 윌버의 다른 책은 권할 수 있다. 가령 《모든 것의 역사--인간 의식과 온 우주가 진화해온 발자취》(조효남 역, 대원, 2004) 같은 책은 윌버의 모든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단히 훌륭한 책이다.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한 자의식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갖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바로 이런 의식을 갖는 것일까? 아니면 나중에 성장하면서 갖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 인간 진화의 비밀이 숨어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결론을 먼저 말해보면 인간은 태어났을 때에는 이런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 이런 의식을 갖게 되는 시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두 살 즈음으로 추정된다. 이 시점은 아주 조용히 찾아오기 때문에 본인도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이러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들은 모두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본인들은 전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자신의 아이가 이런 상황에 진입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당사자가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혹은 아이가 갑자기 '아니'라는 부정사를 쓰기 시작하면 대체로 자의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라는 부정의 표현은 자기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다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자기라는 정체성이 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이 없다면 자기 입장이라는 게 없는 것이니 긍정할 것도, 부정할 것도 없는 게 되지 않겠는가? 이때 인간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조금 단순한 표현이지만 이때 인간은 동물의 상태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변화는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때의 변화에 비하면 사춘기 때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사춘기 때를 질풍과 노도의 시대라 하지만 그것은 인간 안에서의 변화를 말할 뿐이다. 하지만 2살 때의 변화는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변화를 지칭하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때를 '가증스러운 두 살(terrible two)'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변화가 심하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이때라고들 말한다. 자의식을 갖기 이전의 상태에 대해 아주 간단한 용어로 직설적으로 표현한 학자가 있어 소개해야겠다. 그 학자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폴 틸리히로 역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답게 명쾌하고 신선한 용어로 표현해 주목을 끈다.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했던 유아 상태를 직접적으로 지칭한 것은 아니다. 그가 거론했던 것은 구약(히브리 성서)의 첫 장인 창세기 장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 아담과 이브의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직신학 책에서 이 두 사람은 '꿈꾸는 순진무구함(dreaming innocence)' 상태에 있다고 역설했다. 이 두 사람이 죄 없는 순수한 상태에 있긴 있는데 그 수준이 성자들이 지닌 수준 높은 천진함이 아니라 꿈꾸는 듯한 정신없는 그런 상태라 한 것이다. 나는 이 용어를 부연해서 설명하기를 조금 조야한 표현이지만 '똥오줌 못 가리는' 그런 상태로 표현했다. 실제로 아기들은 똥오줌 못 가리는 그런 원시적인 수준에 있지 않는가? 그것을 틸리히는 꿈꾸는 상태로 본 것이다. 내가 있는지 상대방이 있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꿈꾸듯이 정신이 혼미한(?)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까지 왔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이해가 확실히 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게 제일 좋다.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철학적인 분석을 이용해 이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인류에게는 또 다른 대단히 유용한 설명 방식이 있다. 신화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아닌 상태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이런 신비로운 과정을 설명하려 할 때 신화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이다. 태초에 아무 것도 없을 때 사물이 생기는 신비로운 과정을 신화가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듯이 자의식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는 신비한 과정 역시 신화가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런 신비로운 과정은 고도의 상징을 사용하는 신화가 가장 잘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그럼 어떤 신화가 우리가 위에서 본 인간의 진화 과정에 대해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답은 아담과 이브의 신화이다. 자 그럼 이 신화를 집중적으로 보자.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