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春情

필부 2006. 5. 17. 15:43
 

그리움만 깊어 간다면 그대 속눈썹에 이슬이 맺히도록 그리워진다면 하늘을 보시구려 하늘은 이음새가 없어 겹쳐지지 않았기에 당신과 나를 하나로 안아줍니다. 당신이 무심히 내품는 한숨소리도, 단지 손톱을 퉁기는 무심한 동작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그대 견디기엔 잔혹하다 여겨지거든 하늘을 보시구려 하늘마저 눈을 감고 모른 체 하거든 강으로 가시구려 물은 하나로 이어졌기에 당신이 상류에 있던 나와는 상관없는 하구 그 어디에 있던 우리를 하나로 이어줍니다. 그대 그래도 허전하여 못견디겠거든 바람속에 서 있구려 차거운 감촉이 당신에게 옮겨지거든 그것이 내 체온이라 채우시고 서로 가슴을 맞대고 있다 믿구려 서로가 상대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하루쯤은 견딜 수도 있을 겁니다. 그대 정녕 견딜 수 없다면 사랑 하나로 살 수 있는 밤을 오라 합시다. 소리도 잠이 들고 빛도 죽은 경계도 시작도 끝도 없는 밤을 오라 합시다. 서로의 슬픔으로 울어불 수 있으니 밤에 걷는 길은 허망한 꿈길입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그대여 밤이란 하늘과 강 그리고 바람까지 껴안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둘만의 세상입니다. 오직 사랑만 유일하게 반짝이는 밤으로 갑시다. 아침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면 그 뿐이고 설령 꿈이었다 한들 망서릴 이유가 있겠나요. 발자국 줍기 같은 것이 흔적을 둘러보는 일이다. 자취가 희미하여 번져버린 붓자국처럼 아련해지는 것이 과거사다. 어부림을 뒤적거리며 예전에 쏟아냈던 언어들의 무의미를 줍는다. 이 글을 썼을 무렵 분명 춘정에 겨웠으리라. 그래서 제멋에 빠져 꿈을 꾼 것일 것이다. 回春이라 한다. 젊음을 다시 맞아드린다는 말로 기대하는 현상이다. 어디 봄이라서 春情을 느끼겠는가. 마음의 꽃밭에 꽃이 피면 봄이 아니겠는가. 꽃시샘하는 추위로 오늘은 바람이 차다. 그래도 봄을 올 것이고 그 봄을 맞으며 회춘하여 춘정에 젖기도 할 것이다. 봄바람이 좋아 봄바람 나는 일이 봄의 탓이라 할 수 있을까. 마음가짐이고, 바라보는 눈을 통해 봄이 오는 거이 아니겠는가. 다시 온 봄을 아는체도 하지 않으면 그냥 가고 말 것이다. 아무튼 고목에 새순이 돋아나는 새 봄은 다시 올 테니 내 가슴에다 씨앗이나 묻어두고 볼 일이다. 마음에 뿌리는 씨앗은 파는 곳이 없으니 어디로 갈꼬?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