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덴과 에덴의 동쪽 / 이제민 신부

필부 2018. 10. 17. 15:49

에덴과 에덴의 동쪽 / 이제민 신부 1. 아마도 소수의 근본주의자와 광신자를 제외하고는 인류 역사가 창세기에 묘사된 대로 전개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창세기에 서술된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창세기는 역사서나 과학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창세기를 그런 류의 책으로 대할 때 독자는 창세기 저자가 인류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놓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신화로, 성경을 신화책으로 만드는 셈이 된다. 창세기 저자가 의도한 바는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상황에서 진리를 향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창세기의 저자가 서술한 인간 창조에 대한 한 대목을 들여다보자.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 2,8.15-17. 3,1-8) 2. 이 이야기에는 살고 죽는 문제가 관심사로 나타난다. 이 관심사를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된다. 모든 민족의 건국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신화를 통해서 한 민족(인간)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인간의 삶이 엮어지는 영역은 고통과 죽음이 따르는 현실이며, 이 현실은 신화를 통해 서술된다. 신화가 현실에서 탄생한 것이지 현실이 신화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죽음과 고통이 지배하는 인간의 현실에서 탄생한 것이지, 인간의 현실적 운명이 신화의 아담과 하와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들 인물의 삶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현실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를 현실의 삶으로부터 해석하며 읽지 못할 때 독자는 그들을 신화의 존재로 만들게 되며, 자신을 신화의 후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신화는 인간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문학적 도구이다. 성경의 아담과 하와는 신화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이다. 그들의 운명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성경 저술의 목적은 우리를 신화로 안내하는 데에 있지 않고, 우리를 고통과 죽음이 지배하는 현실로 안내하여, 그 안에서 하느님을 신뢰하며 희망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는 데 있다. 성경은 왜 인간이 이런 죄스런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희망을 가지고 살도록 한다. 구원은 이상적인 에덴을 향하는 데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신뢰하면서 서로 사랑할 때 체험된다. 에덴과 에덴 동쪽의 이야기는 인간의 현실과 희망이 투사된 이야기이며 아담과 하와는 우리 모두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첨언: 참으로 좋아하는 신부님이시다. 뵈온 적은 없어도 책을 통해 항상 대면하고 있다. 교리수업 후 세례를 통해 신앙에 입문하였다. 성체만 모시게 되면 하늘이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구도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신부님은 손을 내미시어 동행을 허락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