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슬라우스 보르스의 "죽은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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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슬라우스 보르스의 "죽은 후에는..." 종말론을 희망의 신학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 교리의 일부분이 아니며 성서의 끝 부분에 떨어진 부록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한 사실은 신학 진술들이 본래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신학은 신비 자체에 담긴 궁극적인 내용에 대해 진술하려는 노력입니다. 신비가 담긴 이 궁극적인 내용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미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그 본질로 볼 때 약속된 것입니다. 궁극적인 형태로 약속된 것이 현재 주어진다는 것은 오직 희망의 형태로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희망은 우리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영혼과 같습니다. 희망은 인간 존재 이해를 위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희망은 인간의 존재 이해 내면에 정신입니다. 그리스도교적 복음 선포, 교회, 그리스도교적 실존도 모두 미래를 향해 있고, 교리도 미래지향적으로 숙고되며, 그리스도교나 신자의 신분에 대한 진술도 전부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는 일이고, 그래서 출애굽(exodus)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야말로 사유와 생명의 중개자요, 우리 실존의 기본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 분위기에서 신학자는 비로소 하느님에 대한 진술을 포함한 신앙의 본질적 내용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종말론이 다루는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교 사유 체계 안에 있는 여러 내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 사유가 참되게 실행될 수 있기 위한 조건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말론의 전제조건에 대해 살펴본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전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성 대해 생각해 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묵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라디슬라우스 보르스의 ‘ 죽은 후에는...’ (가톨릭대학출판부) 라는 책을 펼치고 그리스도교 종말론을 위한 실존적 전제들의 도입부를 옮긴 글입니다. 우리들의 내일에 대한 책입니다. 우리의 내일이란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까요? 시간적 내일만이 아니라 시간에 따르는 공간의 이동과 함께 우리 존재에 대한 물음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화두이고, 나이가 들면서 그림자처럼 제 발자국으로 밝고 가는 확인되는 현실입니다. 매일 밤 잠이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으며, 우리는 세례라는 죽음을 통해 주님께 향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습관처럼 익숙해진 신앙생활로 이어져 무덤덤해지는 신앙감각으로 망연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가을이었습니다. 목적상실처럼 희망이 무엇인지를 놓치고만 까닭입니다. 여기에 종말론은 좋은 자극을 줍니다. 이 책을 딛고 기독교 종말론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편하고 쉽게 성찰할 수 있는 신앙으로 죽음에서 희망을 건져줍니다. 이 가을이 익어 떨어지기 전에 묵상해보시라 권하고 싶은 작은 책입니다. 이 책 후미에 소죄에 대한 고찰이 들어 있는데, 너무 좋아 다음에 소개할까합니다. 모처럼 저희 성당에 책소개를 한 글입니다. 신앙이란 주관이기에 될 수 있다면 끼리 외는 피하려는 생각입니다. 허나 누구나 죽음이라는 명제는 받아논 밥상과 같은 것이기에 남의 밥상도 훔쳐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옮겨 둡니다. 곁들여 항상 어부림에서 함께하시는 분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