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와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중관련 - 정하권

필부 2017. 10. 3. 13:34

하느님 나라와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중관련 - 정하권 창조주에 대해서는 근원적으로 종속자이면서 세상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관리자인 인간은 그의 관리대상인 세상과 그의 최후의 목적인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이중의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이미 이 세상에 왔지만 그것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이미’와 ‘아직’의 두 가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또 세상에 관련시켜보면, 우리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이지 현세가 아니므로 현세를 초월해서 목표를 지향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이 목표에 이르는 길은 이 현세에 있기 때문에 현세의 참여 없이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현세에 대하여서도 초월과 참여라는 이중 관련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세상 밖에서만 달성할 수 있는 목적을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하여 추구해야 하고,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목적을 인간의 노력 안에서 노력을 통하여 추구해야 되는 여기에 인간의 역리(逆理)가 있는 것이다. “ 세상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과정에도 인간은 조물주에의 종속성과 물질세계에 대한 자율성의 조화라는 이중관련을 다시 발견한다. 조물주에 대한 절대적 종속성을 핑계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문명건설도 최후 목적달성도 할 수 없으며, 상대적 자율성을 절대시하여 현실에만 빠져버려도 역시 그 인생은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현세의 생활은 엄밀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제조물이 아니고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인간은 자유로운 노력으로 이것을 추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노력을 성공시키는 힘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성장 도상에 있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은총과 인간의 협동으로 성장한다. 하느님 나라와 분리될 수 없는 세상에 대하여 고전적 신학자들은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는 종말에 가서 완성되니 현세에 대해서는 초월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강생의 신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하느님 나라는 현세에 이미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이 세상에 내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와 현세와의 필연적 관련 때문에 세상을 초월하면서도 그 안에 참여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초월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세상의 원리 중 하나인 어둠과 죄악에 대하여 투쟁하면서 자신의 정화를 계속해야 하고,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세상의 정당한 발전과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인간의 세계가 선과 악의 투쟁과 갖가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일지라도, 인간의 구원의 길이 세상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비관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한 구속으로 구원된 세상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인간의 본질만이 아니고 인간의 존재상황인 시공과 물질까지 미친다. 따라서 물질과 세상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아니라 가치 있는 재료로 인간의 향배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앙인이 신앙으로써 문명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하느님 창조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세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구세사를 만들어간다는 뜻이 있다. 인간과 사회의 완성은 역사성과 사회성 안에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구세사의 추진력인 신앙도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의 구체적인 행동 규범은 완성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우주의 역사 안에 현실적으로 참여하여 우주상의 내용을 구세사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2천년 교회사의 성공과 실패, 영광과 치욕도 불완전한 인간들에 의한 구세사 전개에 피할 수 없게 부수되는 인간의 조건들이다. 현실의 교회는 세상에서도 초연해서도 아니 되고 세상에 흡수되어서도 아니 되는 모순을 안은 처지대로 종말적 완성을 향하여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첨언 분도출판사에서 간행된 교회에 관한 교의신학이란 부제가 붙은 정하권 지음 '교회론 2 '에서 옮긴 글입니다. 요즘 교회가 우리에게 무엇이냐는 생각으로 교회론에 대한 서적을 뒤적입니다. 간혹 세상과 하느님 나라의 이질적인 느낌에서 오는 당혹감으로 망연해지곤 하였습니다. 물론 무지와 부족한 식견과 미천한 신앙에서 오는 것이겠지만요. 누구나 이 세상에서 신앙살이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감하실 것입니다. 역시 교회도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기에 그렇겠지요. 내 방식대로 밑줄긋기를 할까하다가 이 절 대부분을 저자의 표현대로 옮겼습니다. 길은 길 위에서 찾아지는 법이지요. 교우 여러분! 추석 한가위 소중하게 보내십시요. 오랫만에 저희 성당카페에 올리는 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아니라, 어떤 종교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목적인 이상이라 바꾸어 읽어 해석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 옮겨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