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앙’ 개념의 기본적 이해 - 심상태 2. ‘믿음’의 성서적 의미

필부 2017. 2. 10. 10:27

‘신앙’ 개념의 기본적 이해 - 심상태 (수원 가톨릭대 교수/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2. ‘믿음’의 성서적 의미 성서상으로 볼 때 구약성서에는 ‘믿는다’는 개념을 나타내는 확정된 전문용어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70인 번역판에 ‘믿는다’ (πιστις; πιστευειν)로 번역된 일련의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중에서 ‘아만’(aman, ןמא)이라는 단어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인정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계에서 바쳐지는 기도 끝에 그 기도내용을 강화하는 형식으로 사용되는 ‘아멘’은 바로 이 ‘아만’의 부사형이다. ‘아만’은 한 실재가 확고하고 확실하며, 약속하는 바를 충실히 준수한다는 것을 말하는 개념이다. ‘아멘’은 ‘네, 그렇습니다’고 단정적 의미로서나, 아니면 “네, 그래야 합니다”고 희망에 차서 소원하는 의미로 번역된다. 이 ‘아멘’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옳소. 그러합니다’라고 동의하면서 자신에게도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다 회당에서 하느님의 찬미가 읊어지면 회중은 ‘아멘’으로 소리내어 응답하였다. 신앙은 인간이 그 자신에게 소여되어 있는 실재의 충실성과 견실성을 신뢰하고, 여기에 자신의 실존을 정초(定礎)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서적 확신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온갖 조물에 의탁하지 않고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할 때에만 이러한 확고한 기반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 야훼는 바로 신의, 충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을 의탁하고 의지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나타내는 상징이 바위이다. 구약에는 시편을 위시하여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를 바위로 지칭하는 귀절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 야훼를 내가 부르면, 너희는 우리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라. 하느님은 반석이시니 그 하시는 일이 완전하시고, 가시는 길은 곧바르시다.”(신명 32,2이하; 32,18. 31 참조). “야훼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구하시는 이, 나의 하느님, 내가 숨을 바위”. 이스라엘이 의탁할 수 있는 바위로서 하느님께 대한 기도는 찬미와 감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 곤경과 궁핍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를 신의와 충실의 하느님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예언자들도 바위이신 하느님을 상기한다. “겁내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오래 전부터 미리 들려 주고 알려 주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의 증인이다. 나밖에 다른 신이 또 있느냐? 과연 다른 바위는 없다.”(이사 44,8; 17,10; 26,4; 30,29; 하바 1,12). 구약에서 신앙이란 인간이 바위처럼 확고한 하느님께 ‘아멘’을 말하는 것, 자신의 실존을 전적으로 하느님 위에 정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아멘’으로 응답하게 되는 내용은 하느님의 요청과 명령, 그리고 계명에 대해서는 순명과 인정(시편 119,66), 약속에 대해서는 신뢰(창세 15,6; 예레 39,18), 신의에 대해서는 같은 신의(이사 26,2 이하)의 의미로 인간은 ‘아멘’을 발하는 것이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이사 7,9)와 같은 성서구절이 이러한 신앙관을 고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중심 주제인 ‘하느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신뢰 및 순종행위’는 구체적 내용을 지닌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야훼의 충실을 체험하였다고 고백함으로써 신앙을 증언한다. 그런데 그 신앙의 내용은 추상적 명제들이 아니라, 역사 안에 이루어진 하느님의 충실한 행적에 대한 역사적 고백들이다. 구약성서에 구세사적 고백정식들이 발견된다. 빌레암 잠언(Bileam Sprüche)에서 증언되는 소위 인도정식(引導定式)은 가장 오랜 것이다. “그들을 에집트에서 인도하신 하느님”(민수 23,22; 24,8). 십계명도 에집트로부터의 인도를 상기시키는 형식으로 도입되고 있다(출애 20,2; 신명 5,6). 이스라엘 신앙의 진수는 ‘야훼는 우리 하느님 - 우리는 그의 백성’이라는 신조이다 그리고 예언자들이 선포한 바와 같은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 역시 하느님 의 구체적 역사와 상관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을 유일한 구원자로 계시하였고, 이러한 계시인식에 입각해서 이스라엘의 기본 ‘교의’(敎義)인 유일신론이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예수의 삶과 메시지는 전체적으로 ‘믿음’의 표지 안에 위치한다. 신약성서 안에서 ‘πιστισ’(믿음)와 ‘πιστευειν’(믿다) 단어가 핵심개념이 되다시피한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에 등장하는 신앙개념은 신학적으로는 의미가 빈약하다. 여기서 ‘믿는다’는 개념은 예수가 행한 기적과 관련되어 등장한다. 신앙은 인간이 자신의 무력함을 인지하고 예수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권능에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다. 치유와 도움의 능력이 인간들로부터는 나올 수 없으나, 예수에게서 드러난 바처럼 하느님에게는 만사가 가능하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서 일깨워진 신앙은 예수와 관련된 신앙이다. 그리고 이 신앙은 두려움과 불신을 거술러 삶에 안전성과 확실성을 부여한다. 여기서 신앙은 예수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와 삶의 정립으로서, 하느님 안에서 삶을 정초함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예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임재하는 하느님 나라, 아니 하느님을 선포하였다. 그는 자신을 ‘조상들의 전통’(마르 7,5) 위에 세우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마르 1,22) 가르친다. 예수 자신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각성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자기 말은 시작하는 형식으로 ‘아멘’(αμην)을 사용하였다. “아멘, 아멘 나 너희에게 말하노라”(마태 5,18.26; 6,2.5.; 요한 1,51; 3,3.5). 그에 게서 ‘아멘’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예수 자신의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절대진리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그는 이로써 자신이 신앙의 근거이자 원천임을 분명히 하는 한편,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써 신앙을 일깨우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타인들에게서 신의 ‘아멘’을 일깨우는 신앙의 ‘아멘’이자 충실한 증인이다(묵시 3,14).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신앙의 원저자이자 완성자’(히브 12,2)로 지칭된다. 예수의 전권은 부활 이후에 명현적으로 된다.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론적으로 각인된 고백형식들이 생겨났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로마 10,9; 1고린 12,3).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1 요한 2,22; 5,1),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1 요한 4,15; 5,5 기타)등은 초기 명사적 고백정식(Homologie)들의 내용이다. 이밖에도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고백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고백하는 동사적 정식(Pistisformeln)들도 있다. “하느님께서 그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셨다”(로마 10,9; 사도 2,24.32; 3,15; 1 베드 1,21). 가장 저명한 고백정식은 고린토 전서 15장 3-5절의 신앙정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 후에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다”. 바울로 사도는 이 정식을 전승으로 도입하여 자기 자신의 기반으로 삼는다. 여기서 신앙은 그리스도 고백과 유대되어 있다. 그리고 신앙은 회개의 경위,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수용, 이 메시지 안에서의 항구함, 하느님의 요청에 따른 삶, 순교에 이르기 까지의 증거를 나타낸다. 그밖에 πιστισ는 내용과 관련딘 규정을 아울러 지닌다. 특히 바울로 사도에게서 신앙의 내용적 요소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에게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선포의 수용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의미를 ‘진실로 간주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내용적으로 규정된 신앙은 위탁되고 파견된 증인들에게 매어 있다. 그래서 구원공동체인 교회에 속하기 위해 수세자(受洗者)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진실하다고 여겨야만 했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에 참여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데, 그리스도 사건의 진실성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에 참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앙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실재라고 간주하는 것이며, 그 대상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역사(役事)의 실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서방 그리스도교계에서 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요한에게서 신앙은 인식과 특별관계를 맺고 있다. 신앙은 인식보다 선행하면서 인식을 따른다고 파악된다. 인식 또한 신앙의 틀 안에 머문다. 인식에 반대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맴목과 거짓이다. 신앙의 ‘인식’ 안에서 구궝과 삶이 중재된다고 파악된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항구함, 항상성이 덕으로 표현된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고전적인 성서 신앙 규정으로 간주된다. “신앙은 바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뢰이고, 보지 못하는 것에 확신하는 것이다”. 이어서 확고히 확신해야 하는 내용들이 다음에 지칭된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브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