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성과 영성수련 - 박기호 신부 2.그리스도교의 영성

필부 2013. 12. 6. 23:08
 

영성과 영성수련 - 박기호 신부 그리스도교의 영성 그리스도교의 영성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의 영성은 정상적인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하루는 내가 미사를 위해 사제관을 나오는데 까치가 심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날밤 고양이가 나무에 올라가 까치 새끼를 물어 죽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미까치는 자기 새끼를 죽인 고양이를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울어대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오던 한 자매가 나에게 "신부님, 오늘은 참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까치가 저렇게 울어대는 걸 보니." 하는 것이었다. 그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혹은 좋은 소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기 때문에 까치의 울음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까치는 자기 새끼를 잃어버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시는 분, 나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나의 청원을 기꺼이 들어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이시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어왔던 얘기고 우리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사실 자체가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렇게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 주는 그런 울음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회가 혹은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사회문화적 전통이 뭔가 잘못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승이 제대로 되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좀더 깊은 내면의 세계, 영성을 깊이 접하지 못하고 살아갔을 때 십자가에 대한 의미는 나에게 그저 좋은 소식, 구원, 혹은 목에 반짝거리는 목걸이 정도로 나타날 수가 있다. 모든 종교가 각각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종교는 윤회설이라는 눈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종교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유심론적 눈으로 사물을 보기도 하며 여러 가지 정신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는 복음정신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복음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측면이 일반적으로 얘기해 오는 명상과는 구분된다. 사색과 명상, 묵상과 관상은 각각의 차원이 있다. 사색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것이며, 명상은 영적 차원에서 사색하는 것이다. 묵상은 신앙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묵상은 신앙과 관련시켜서 생각하는 신앙적 명상이다. 묵상이 나의 이성과 상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관상이란 나를 온전히 비운 상태에서 하느님께서 나의 묵상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복음정신이라는 우리의 영성을 여러 차원에서 영성수련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들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 즉 복음정신의 핵심은 육화와 십자가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과 모범적인 인간, 탁월한 인간성으로 살다가 인간 세계에서 제거됐다는 이 두 가지 사건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적인 사건으로 제시된다. 영성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자기 영성을 가지고 사물을 식별하는 차원이고 또 하나는 식별된 사물을 통해 자기에게 나타나는 반응이다. 무엇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꼈다면 도와주어야겠다든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되고 그 판단에 의해 나타나는 행동이 있다. 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수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수덕과 결합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교 신앙이 행동화로 드러나게 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계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살아가신 동안 가장 강조하셨던 것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사를 통해 내려오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는 대체로 실종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만 강조되었다. 특히 가톨릭에서 그런 부분이 많은데, 세례성사, 고해성사 등 성사를 하거나, 교회법을 충실히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나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계시하신 것이며 그래서 당신 자신이 길이 되어 주셨다. 복음정신이란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실까?"에 대한 명상이다. 예수의 마음으로 보고, 예수의 가르침으로 판단하고, 예수처럼 실행하는 것이다. 복음정신이 우리의 영성이라면 세상 사물을 모두 영성의 눈, 즉 복음정신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정신이라는 영성을 지니지 못할 때에는 경험적 이데올로기, 배워온 이데올로기가 영성을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복음을 읽고 인용하는 목회자가 각각 다른 정치적, 사회적 입장에 서게 되고 설교도 행동도 달리 하게 된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분단현상을 볼 때에도 복음의 눈으로 본다면 이것이 어떤 문제이고 하느님께서 어떤 걸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는데 영성의 눈이 없다면 자기가 살아온 경험, 가령 자신이 어렸을 때 공산당에게 엄청나게 당했다거나 자기 부모가 어떻게 당했다는 경험에 의해, 혹은 반공교육에 의해 익혀온 이데올로기를 통해 분단의 현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당연히 통일을 반대하거나 통일을 한다면 상대방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판단하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정신이라는 영성을 철저히 지니고 복음정신을 통해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수련을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복음정신으로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타당한 행동양식을 지니게 될 것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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