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식학과 분석심리학 / 김경일 4. 마음의 기능과 작용
유식학과 분석심리학 / 김경일 4. 마음의 기능과 작용 마음의 작용을 유식학의 입장에서는 51가지 심소(心所)로 설명할 수 있다.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수한 작용을 하지만 유식학은 51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5변행, 5별경, 11선, 6번뇌, 20수번뇌, 4부정이 그것이다. 5변행이라 하면 마음의 인식 작용을 5가지의 순서에 의해 설명해 놓은 것이다. 촉(觸)은 대상과의 접촉으로서 마음이 움직이는 동기이다. 작의(作意)는 접촉한 대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수(受)는 대상을 판단하여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상(想)은 받아들인 것에 이름이나 개념을 붙이는 마음이고, 사(思)는 상(想)에 대해 삿되다, 바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생각을 짓는 것을 말한다. 5별경은 관심의 대상에 따라 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욕(慾)은 바람으로, 대상에 대해 선행을 하거나 악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승해(勝解)는 뛰어난 이해 능력으로서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염(念)은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정(定)은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롭게 인식하는 마음이다. 11선은 착한 마음이 일어나는 심리적 작용 11가지를 말한다. 신(信), 참(慙),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痴), 근(根), 안(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 등이다. 6번뇌는 마음을 혼탁하게 하고 고통과 갈등을 주는 6가지 근본 번뇌로서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이다. 20수번뇌는 6근본번뇌에서 파생되는 20가지의 번뇌로서 다음과 같다. 분(忿), 한(恨), 뇌(惱), 부(覆), 질(嫉), 간(慳), 광(誑), 첨(諂), 해(害), 교(憍), 무참(無慙), 무괴(無愧), 도거(悼擧), 혼침(昏沈),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 등이다. 4부정심소는 선악이 아직 결정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로서 회(悔), 면(眠), 심(尋), 사(伺)의 네 가지가 있다. (지면 관계상 11선, 6번뇌, 20수번뇌, 4부정심소에 대한 내용 설명은 생략한다.) 분석심리학은 유식학처럼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에 대한 설명은 없다. 특히 선심소나 번뇌심소의 개념과 비교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마음의 작용을 선악과 같은 가치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두고 그것을 분석하여 원인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유식학은 마음이 발현되는 상태를 설명한다면, 분석심리학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 까닭을 설명한다. 즉, 현상 그 자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유식학과의 차이이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은 경험적이고 현상학적인 특징을 지닌다. 즉, 선심소나 번뇌심소가 일어나는 원인으로서 마음의 기능들을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개념들이 콤플렉스,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이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르면 주로 부정적인 성격을 띠지만 융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열등한 인격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전체 정신에 통합되지 않는 것, 양립할 수 없는 것, 동화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를 지칭한다. 심리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콤플렉스의 작용으로 설명한다. 콤플렉스는 마음의 일부분이지만 조각난 마음으로서 자아의식에 의해 쫓겨나고 버림받은 마음이다. 예를 들어, 인정하기 싫고 수용할 수 없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자식을 외면하고 밀어낼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은 애물단지이고 갈등을 일으키는 근원이 된다. 잊힐 만하면 나타나서 부모를 괴롭힌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분통 터지고 억울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자식으로 인정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애물단지 자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가 있지만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모험이 따른다. 콤플렉스는 그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콤플렉스의 통합이야말로 온전한 자기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꿈을 통해서도 무의식을 분석하지만 콤플렉스를 통해서도 무의식을 분석하게 된다. ‘그림자’는 물체의 뒷면에 생기는 어두운 부분이다. 융은 인간정신의 열등한 기능에 대해 그림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식으로서 주의 깊게 찾으면 찾아낼 수 있는 자신의 열등한 인격이다. 타인이 그것을 지적하면 불쾌하지만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무의식의 아주 얕은 표피 부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자기주장을 잘 못하는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에게서 그런 행동을 보게 될 때에 더욱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자녀의 행동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의식에 동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미숙한 인격으로 존재하고 그것이 움직일 때는 분노와 극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림자를 의식 속으로 받아들여서 통합시켜 나갈 때 그림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통합하는 작업은 인격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이지만 꼭 벗어야만 하는 위선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체면에 해당할 수 있다. 체면은 내면의 참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외부로 드러난 자기의 모습이다. 참된 자기가 아니므로 외적 인격이라고 부른다. 만약에 페르소나를 진정한 자기로 받아들이고 집착을 하게 되면 내적 인격과의 단절이 생기고 그로 인해 심리적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마치 군인이 군대에서는 엄격한 언행을 취하지만 자녀들에게는 자상한 모습을 보일 수 있고, 또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항상 엄격한 군인의 모습으로만 존재한다면 내적 인격과 단절될 수가 있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페르소나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극복되어야 할 가면적 자기이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인간의 무의식에 있는 내적 인격의 특성으로서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 하고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 한다. 이 개념은 융심리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유식학에서는 특별히 남녀의 마음의 특징을 다루는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융은 정신을 분석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남성의 특징이 힘(logos)이라면 여성의 특징은 감성(pathos)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이 강하고 지혜롭다고 하면 여성은 자애롭고 예민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고구려 문화가 남성적이고 백제 문화가 여성적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런 특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 속의 미숙한 부분으로,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의 미숙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정신의 침전물들이다. ‘원형(archetype)’은 융심리학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원형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분석하기보다 원형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아르케(arche)’는 시원, 기원, 시초, 시작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인간정신의 시작에서부터 모든 경험의 침전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원형이란 틀은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내용물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형에 대한 획일적인 설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씨앗 속에는 장차 식물이 자라면서 발현될 모든 비밀이 들어 있지만 씨앗을 분해해서 식물의 요소들을 밝혀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원형은 융에게는 정신의 시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식학의 본유종자의 개념과 대비해 볼 수 있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