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 2.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사랑 (1)

필부 2008. 12. 28. 17:28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 2.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사랑 자비로운 운명이 어머니로부터의, 곧 자궁내 존재로부터의 분리에서 생기는 불안을 알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어린애는 태어나는 순간에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것이다. 태어난 후에도 갓난애는 탄생 이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갓난애는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며 자기 밖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갓난애가 적극적으로 느끼는 자극은 따뜻함과 음식뿐이지만 따뜻함과 음식을 그 근원, 곧 어머니와 구별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따뜻함이고 어머니는 음식이며 어머니는 만족과 안전의 유쾌한 상태이다. 이 상태는 프로이트의 용어를 사용하면 자아 도취의 상태이다. 사람과 사물 등 외부의 실재는 신체의 내적 상태를 만족시키든가, 또는 신체의 내적 상태를 실망시키든가 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현실적인 것은 내부에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밖에 있는 것은 나의 욕구라는 관점에서만 -결코 외부적인 것 자체의 성질이나 욕구라는 관점에서는 아니다.- 현실적이다. 어린애는 성장하고 발달함에 따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게 된다. 젖을 먹는데서 얻는 만족은 젖꼭지와 구별되고 어머니의 가슴은 어머니와 구별된다. 마침내 어린애는 갈증, 만족을 주는 젖, 가슴, 어머니를 각기 다른 실재로서 경험한다. 어린애는 다른 많은 사물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서, 곧 스스로의 존재를 갖는 것으로서 지각할 줄 알게 된다. 이 때에는 이 사물들에 명칭을 부여하는 것을 배운다. 동시에 이 사물들을 다룰 줄 알게 된다. 불은 뜨겁고 고통스러우며 어머니의 몸은 따뜻하고 유쾌하며 나무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종이는 가볍고 찢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어린애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배운다. 내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는 어머니는 미소를 지을 것이고 내가 울면 어머니는 나를 안아 줄 것이며 내가 배변을 하면 어머니는 칭찬해 줄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경험은 결정되고 통합되어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경험이 된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무력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아름답고 칭찬할 만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어머니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는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현재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혹은 아마도 더욱 정확하게는 나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러한 경험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사랑받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현재의 상태, 곧 그녀의 자식으로 남아 있는 것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복이고 평화이며 획득할 필요도, 보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의 무조건적 성질에도 역시 부정적 측면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보답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획득될 수도 만들어 낼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없다면 그것은 마치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이 소멸한 것과 같다. 따라서 어머니의 사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8세 반부터 10세이전의 연령의 대부분의 아동들(10)에게 있어서 문제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받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문제이다. 이 연령까지의 아동은 아직도 사랑할 줄 모른다. 그는 사랑받는 경우 기쁘고 즐겁게 반응할 뿐이다. 아동 발달의 이단계에서 아동의 심상에는 새로운 요인, 곧 자신의 행위에 의해 사랑을 만들어 내려는 새로운 감정적 요인이 생긴다. 처음으로 어린이는 어머니(또는 아버지)에게 뭣인가 주려는 무엇이든 -시나 그림, 그 밖의 것들- 만들어 주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이의 생활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관념은 사랑받는 것으로부터 사랑하는, 창조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변한다. 이렇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랑이 성숙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마침내 어린이는 이제 젊은이가 되어 자기 본위성, 곧 다른 사람들을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극복한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도 자기 자신의 욕구만큼 중요해진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더욱 중요해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욱 만족스럽고 더욱 즐겁게 된다.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사랑함으로써 그는 자아 도취와 자기 본위의 상태에 의해 이루어진 고독과 고립의 감방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는 새로운 합일감, 참여감, 일체감을 느낀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랑받음으로써 받아들이는 의존의 상태보다는 오히려 사랑함으로써 사랑을 만들어 내는 잠재력을 느끼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작고 무력하고 병든, 또는 착한 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던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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