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겨울이 오면

필부 2008. 12. 9. 18:03
 

겨울밤 등불을 끄고 겨울이 깊어가는 밤에 등불을 끈 채 어둠 속을 더듬어 커튼자락을 젖치고 창밖을 보세요. 멀리서 개 짖는 소리는 앞산에 부딪쳐 되돌아오다가 각을 벌려 울려 퍼지고 이따금 희미하게 다가오다 멀어져가는 야간열차의 가냘픈 숨찬 소리가 시서러워 당신은 숨을 죽이고 흔적을 찾듯 귀밟게 될 것입니다. 헛기침이라도 한번 하면 잔잔하게 깔린 정적이 무너져 내리고 작은 근심을 머리맡에 밀쳐둔 채 순하게 잠이 든 사람을 깨울 것 같을 겁니다. 당신은 깎아놓은 붙박이처럼 한점 미동도 없이 겨울밤이 깊어가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어둠이 얼어붙는 겨울밤을 불빛 없는 창가에 서서 서툰 눈길로 세상을 보듯 감성을 돋우지 말고 그냥 더듬어 보세요. 손을 털고 빈털터리가 된 잡목들은 빈손을 들고 겨울밤에도 산을 덮고 있을 것입니다. 잔설이 산등성이마다 듬성듬성 쌓여 하얗게 빛을 내면 골짜기의 숲은 어둠을 두텁게 둘러쓰고 더욱 짙게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그 골 타고 내려오다 보면 움츠리고 띄엄띄엄 띄어 앉은 산마을 지붕 위로 겨울밤이 부질없이 쌓이는 걸 목격할 것이고 밤 새워 눈을 뜬 채 불을 밝힌 창문 하나 있다면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대여. 살얼음이 풀리고 이 겨울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하루쯤 겨울밤을 지켜 주십시오. 당신 혼자 남겨진 듯싶다가도 당신이 이 밤을 모두 가지게 된 사실에 슬프고 쓸쓸하여 눈물짓게 되지만 잠시는 웃게 되는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 올린 낙서입니다. 겨울이 되면 고질병처럼 그 때, 그 절망이 되살아 나곤 합니다. 아직 그 아픔의 그늘에서 서성이는지 모릅니다. 가슴에 끓는 피가 차가워질 때 지워지게 될 것인지..... 고통처럼 가슴을 에이는 기억이지만 다시 떠들어보며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정화된 얼음 한조각이 가슴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입니다. 영산강 물줄기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거두어 가슴에 따뜻하게 안아봅니다. 추운 날씨에 자신을 벌거벗기지는 않으시겠죠? ..... Shigeru Umebayashi-Polonaise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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