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1. 사랑 (8)

필부 2008. 12. 4. 10:29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 1. 사랑 - 인간의 실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순한 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애매하고 복잡하다. 가장 광범하게 퍼져 있는 오해는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는 오해이다. 그 성격이 받아들이고 착취하고 혹은 저장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준다고 하는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시장형의 성격은 주려고 하지만 단지 받는 것과 교환으로 줄 뿐이다. 그에게는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은 사기당하는 것이다.(3) 성격의 주요 방향이 비생산적인 사람들은 주는 것을 가난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형의 개인들은 대부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이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그들은 주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이유 때문에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덕은 희생을 감수한다는 행위에서만 성립된다. 그들의 경우,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낫다는 규범은 환희를 경험하기보다는 박탈당하는 것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이다. 생산적인 성격의 경우,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의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 나의 능력을 경험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나는 매우 큰 환희를 느낀다. 나는 나 자신을 넘쳐 흐르고 소비하고 생동하는 자로서, 따라서 즐거운 자로서 경험한다.(4)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이 원리를 여러 가지 특수 현상에 적용해 보고 이 원리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의 영역에 가장 기본적인 예가 있다. 남성의 성 기능의 절정은 준다고 하는 데 있다. 남성의 성 기능의 결정은 준다는 데 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성기를 여자에게 준다. 오르가슴의 순간에는 남자는 정액을 여자에게 준다. 그는 능력이 있는 한, 정액을 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만일 줄 수 없다면 그는 성적 불능자이다. 여자의 경우, 비록 약간 더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자기 자신을 준다. 여자는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중심을 향해 문을 열어 준다. 받아들이는 행위에서 그녀는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녀에게 주는 행위가 불가능하다면 만일 그녀가 받기만 한다면, 그는 불감증이다. 여자의 경우, 준다고 하는 행위는 애인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기능에서도 나타난다. 여자는 그녀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애에게 자기 자신을 주고 어린애에게 그녀의 젖과 그녀의 체온을 준다. 주지 않으면 오히려 고통스러울 것이다. 물질적인 영역에서는 준다고 것은 부자임을 의미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오직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자만이 뭔가를 주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험으로 보면 무엇을 최소한도의 필수품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사실상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성격에 달려 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잘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 이상의 가난은 주는 기쁨을 빼앗는다는 사실 때문에 수치이다. 그러나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각별히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그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우머,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그는 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시키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게로 되돌려지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준다고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는 행위에서는 무엇인가 탄생되고 관련된 두 사람은 그들 두 사람을 위해 태어난 생명에 대해 감사한다. 이 말은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는 힘이고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 사상은 마르크스에 의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에는 사랑으로써만, 신뢰에는 신뢰로써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당신의 모든 관계가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5) 그러나 사랑에서만 주는 것이 받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생은 학생에게서 배우고, 배우는 관객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정신분석가는 환자에 의해 -그들이 서로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서로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관계한다면- 치유된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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