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얽힌 세상 / 이찬수 4 인연(因緣)

필부 2007. 10. 31. 11:35
 

온통 얽힌 세상 - 불교적 관계론 / 이찬수 인연(因緣) 불교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았다. 세상이 존재하는 원인을 그 다양한 얽힘에서 보았지, 그것을 넘어서는 불변의 것, 아니 그 밖의 존재는 관심 밖이었다. 붓다도 나를 나되게 해준 것을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그분'이 아닌, 일체의 직간접적인 조건들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를 따르는 불자들 역시 만사를 인연법(因緣法)에 따라 본다. 여기서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며, '연'은 그 원인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외적인 '조건'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러 가지 원인,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결합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새로운 원인, 새로운 조건이 생기면, 그에 따라 변화된다. 그래서 인간도 태어나고(生), 그런 뒤에는 늙고(老), 병들고(病), 때가 되면 죽는다(死). 이 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인지, 일일이 따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붓다도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마즈나타의 죽음, 상계동에서의 교통사고, 무한히 뻗어있는 인드라의 그물에서 보았듯이, 모두가 원인이고 모두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과 연에 의해서 새로운 현상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인연법에 따르면, 가령 같은 사람을 만나고도 모두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를 사랑하게 되어 있는 사람만이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만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그의 내·외적 조건이 다른 사람과 달리 되어 있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인연을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다. 전생에서부터 그를 사랑하도록 씨(因)가 뿌려졌고, 지금 그 사람을 만날 연(緣)이 닿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부부들이 자신의 동반자에 대해 무언가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끄덕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지금의 상황에 신의 섭리 보다는 '인연'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불교적 세계관에 영향받아 사는 한국사람이기에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