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文 [스크랩] 여백의 미 / 문경미 필부 2007. 9. 28. 18:27 여백의 미 / 문경미 무시로 하늘을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열여섯 살 단발머리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내 삶 속에 또렷이 빛나는 별 같은 존재가 되고, 나 또한 사랑하는 이의 삶 속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 살고 싶다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꿈을 막연하게나마 꾸기 시작했던 그 시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던 사춘기시절이었다. 그 때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하늘을 쳐다본다.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무료하고 갑갑할 때 하늘을 보면 단단하게 뭉친 마음의 근육이 서서히 풀리며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그것은 하늘이 여백의 공간을 품었기 때문이다. 한 폭의 동양화 앞에서 한없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눈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 그림 속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백의 공간, 비워진 공간 앞에선 누구나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여백의 하늘에는 뭉게구름을 띄울 수도, 새털구름을 띄울 수도, 한 마리 새를 날려 보낼 수도 있으며, 여백의 물에는 연분홍 복사꽃을 띄우거나 붉은 단풍잎을 띄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간과 상상력의 무한한 확대가 가능한 것이 여백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동양화의 미를 ‘여백의 미’에 있다고 한 것도 아마 그런 연유일 것이다. 칠한 위에 몇 번이고 덧칠하는 기법을 사용하는 서양화에 여백이 있다면 그건 그저 미완성의 개념으로 통할 뿐이다. 그러나 동양화에서의 여백은 오히려 멋을 살리는 하나의 기법이 된다. 여기서 여백은 무의미하게 버려진 빈 공간이 아니라 그림 안에서 숨 쉬는 실체적 공간이며, 작품의 멋과 깊이를 더해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해둔 공간으로 당당히 존재한다. 인생에도 여백의 공간을 설정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삶의 여유를 찾는 노력과 통한다. 적당한 여백은 삶을 한층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용서하는 마음,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마음 등, 한마디로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여백의 공간을 설정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은 시종일관 타인을 위한 배려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종내는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만드는 현명한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가두는 울타리를 만들게 되고 서로에게 놓인 최소한의 거리도 용납하지 않으려 든다. 사사건건 사랑이라는 구실을 앞세워 보기 좋게 상대방을 얽어매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 아닌 구속과 집착의 시작인 동시에 자신 또한 초조와 불안의 구렁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끼는 화초를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지나친 관심과 보호 속에는 눈에 띄지 않는 독이 들어있어 자칫 애지중지하던 화초를 시름시름 병들게 할 수도 있지 않던가. 그러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게 마음이다. 나는 줄곧 좁디좁은 마음에 여백을 만들기는커녕 이루고 싶은 욕망으로 빼곡히 채우기 일쑤였고, 누군가를 내 마음 속에서 쉬어가게 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에 기대어 지친 영혼을 위로 받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기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노래한 시 중 한 편을 가끔 음미해 보곤 한다. 당신이 그리운 건 .... 이정하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기대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서로의 영혼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아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서로의 영혼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아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시인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부질없는 욕심으로 채워진 내 마음 한쪽을 조금씩 비워내는 노력을 해본다. 하루를 두고 보면 밤이 낮보다 여백을 많이 가졌다. 밤이 낮 동안 지친 영혼을 편히 쉬게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어둠이라는 온전한 여백의 공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불변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 여백의 거리를 유지한 채 빛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이와 내가 서로의 삶 속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열여섯 단발머리 시절의 유치한 것 같았던 꿈이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꿈이 아니었던가 싶다. 밤하늘을 쳐다볼 때면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럴 적마다 혼자 미소 짓게 된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