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 가을에
모든 형태는 에고를 의미한다. 인간도 에고를 갖고 있다. 모든 형태는 에고 속에 중심을 두고 있다. 형태를 초월했다는 것은 에고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그때 그대의 중심은 그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없다. 오쇼 라즈니쉬의 ‘莊子’ 머리글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가을이 나도 모르게 허락도 없이 성큼 가슴 속으로 기어들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마음을 맡겨두면 온갖 물감을 다 풀어 내 마음에다 수도 없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가을 내내 슬픈 줄거리가 수채화로 그려져 쓸쓸한 전시회가 열릴 것이고, 드높아진 가을하늘이 내 눈에서 노을로 피어날 것입니다. 어찌 벌게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겠습니까. 강물이 출렁이는 눈으로 그대에게 다가 갈 수가 있겠습니까. 가을이면 그 푸른 강물에 익사하는 사람이 넘쳐나는데요. 가을입니다. 가을이면 유난히도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마음 감기가 유행하고요. 가난한 가슴을 덥히는 일이란 쉽지 않기 때문에 앞섶을 단속해야 합니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한번 마음에 자리한 찬 기운은 일어나 나갈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해야 될 사람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법이지요. 사랑은 미묘하여 마음의 문을 제 맘대로 여닫고 들어와 온갖 파도를 일구고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내 마음의 흔적은 스스로 제 알아서 지우라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려진 그림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은 기억들은 슬픔으로 자라는 법이지요. 한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눈을 감을 때까지요. 눈을 감기까지 가슴에다 생명력이 유난히 질긴 한그루 나무를 심어두는 일이 됩니다. 가을에 심는 나무는 더욱 무성합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삶은 공허한 거라 합니다. 그러나 자신으로 가득 채운 일상은 더욱 고독한 법입니다. 에고를 사룬다면 이 가을에 무사할까요? 우리 어디로 가죠, 이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