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필부 2007. 8. 9. 22:02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윤천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혼자서 부르며 왔던 어떤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만을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서늘한 열망의 가슴이 바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속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거기 이 세상을 한꺼번에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과도 같았을, 그런 일순과의 마주침이라면,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손가락 빗질인 양 쓸어 올려보다가, 목을 꺾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려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魂이라도 그쪽으로 머릴 두려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누구에게나 비밀 한두 가지는 있다. 부끄러운 숨겨진 얼룩도 있을 터고, 남 다른 욕망이나 소원, 또는 얼굴 붉혀지는 아픔도 있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 보고 듣고 접촉하며 부단하게 경험하였으니 한두 가지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비밀들을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 비밀창고의 문을 열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얼굴들을 꺼낸다면 어떤 표정들로 나와 대면하게 될까. 그 중 나를 안타깝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내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런 이치를 알기에 기다림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기다림이 없는 그리움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통 같은 슬픔을 준다. 희망이 없는 소원으로 스스로 자신을 태우는 것이다. 그리움뿐인 사랑은 가슴에 슬픔이라는 물감을 떨구어 놓는다. 번져가는 슬픔은 안타깝게도 그리움만 키워갈 따름이고, 그래서 가슴 아픈 사람들은 서성이듯 여행을 떠나는지 모른다. 기다릴 이유가 없기에 찾아나서는 게 여행이다. 여행은 방황이고 방황은 습관이 되는 법이다. 눈을 하늘에 두자.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사랑이다. 그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며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Concierto De Aranjuez - Danielle Licari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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